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21세기 부의 원천이 3D(Digital, DNA, Design)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은 지식이 직접적으로 가치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투자에 심혈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CEO들은 투자를 결정할 때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경제외적인 변수가 많아 상당부분 ‘운이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요즘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합리적인 투자결정과정 덕택에 ‘운’이라는 요소는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CEO들은 또 기업체의 조직원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경제가 ‘공생을 목적으로 존재’한다는 이유에서 인화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CEO들은 경영환경에 대한 진단과 경영원칙을 묻는 주관식 설문에서 이같은 견해를 많이 피력했다.
◇현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CEO의 75%는 앞으로 경제가 호전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25%는 경기침체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응답했다.경기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응답이 없어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경기가 본격 회복되는 시기에 대해서는 44%가 3·4분기부터라고 응답했고 40%는 4·4분기부터라고 답해 대부분 연내 회복을 점쳤다. CEO들은 기업경기실사지수(BSI)나 소비자평가지수(CSI) 등 심리지표들이 회복되고 있고,실물경기도 바닥을 치는 형국인 만큼 미국과 일본의 경기침체가 더 악화되지 않는 한 경기는 완만한 상승기류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CEO들은 따라서 현 단계에서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을 쓸 필요는 없다(80%)며 이보다는 지속적인 구조조정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각종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회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는 미국과 일본의 경기동향(65%) 및 현대·대우 부실 청산(23%) 등 두가지를 압도적으로 꼽았다. CEO들은 이와 함께 올해는 미국과 일본의 동반침체로 수출이 경기를 선도해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수출품목과 지역을 다변화하고,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구조조정 평가는 기대반=97년 외환위기 이후 단행된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4%가 ‘긍정적’이라고 답했고 24%는 ‘보통’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부정적으로 본 CEO는 22%에 그쳤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방법과 강도에 대해서는 문제가 많았다는 지적이 69%나 됐다. CEO들은 구조조정 과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32%)을 꼽았고 다음으로 집단이기주의 극복 실패(26%),정교한 전략 부재 및 정책혼선(24%)을 지적했다.
금융·기업·공공·노동 등 4대 부문 가운데서 개혁이 가장 미진한 부분으로는 절반인 50%가 공공부문을 꼽았고 25%는 노동부문을 들었다.금융과 기업부문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비율은 13%와 12%에 그쳐 이 부문의 개혁은 대체로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CEO들은 공공부분 개혁이 공무원들의 집단적 저항과 이기주의 탓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응답하고 이 때문에 공공부문의 경쟁력이 기업에 비해 월등히 낮다고 지적했다.
CEO들은 4대부문 외에 개혁이 필요한 부문으로 정치?교육?언론을 들었다. 특히 과도한 과외비는 고비용구조로 연결돼 노동생산성을 악화시킨다며 교육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금융부문의 세계화가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78%가 긍정적이라고 답변했다. 이들은 금융개방은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대세이며 아직까지 국내에 들어온 외국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갔다는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22%)한 CEO들은 외국자본은 국내경제가 악화될 경우 일시에 유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이 경우 경제적 충격을 막을 만한 장치도 거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개방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보기술(IT)분야 CEO들은 IT분야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고용창출과 함께 경기를 부양하고 전통산업과 접목이 이뤄져 미래에 대한 국가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80%)고 주문했다.
◇재벌규제 완화돼야 한다=CEO들은 기업 경영환경이 급변한 만큼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를 상황변화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62%)고 응답했다. 대규모기업집단 제도는 차입에 의한 재벌의 문어발식 영역확장을 막기 위한 제도지만 이제는 30대 기업집단이라 해도 그룹별로 매출액과 취급업종 등이 매우 다양하고 격차가 큰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들은 기업집단 대상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고,궁극적으로는 폐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다수 CEO들은 대규모 기업집단 범위를 30대에서 5대 집단 정도로 축소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CEO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능에 대해서도 업무영역 조정과 기업에 대한 지도내용의 개선을 주문했다. 이들은 재벌정책을 일반적인 산업정책과 기업정책으로 나눠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최대한 줄이는 대신 기업들도 낙후된 지배구조가 기업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만큼 지배구조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30대 그룹 출자총액제한(순자산의 25%) 제도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폐지를 주장했으며, 획일적인 부채비율 200%적용도 금융기관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일부 IT업계 CEO들은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원칙은 유지하되 기업의 수익성과 미래가치 창출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탄력적으로 운영할 것을 주문했다. 출자총액과 부채비율 제한을 없애면 재벌의 과잉?중복투자가 다시 불붙고,차입경영이 심화될 경우 연쇄적으로 ‘위기’를 맞는 악순환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고 IT분야 CEO들은 지적했다.
까다로운 지주회사 설립요건에 대해서는 대폭 완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다만 일부 IT분야 CEO들은 100%인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을 완화하고,사업 다각화를 허용하면 IT업계와 중소기업들에 치명타를 안겨 결국에는 화를 부를 수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업들 정부눈치보기 극심하다=CEO들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과거에는 정치권이나 노조의 눈치를 봤으나 요즘에는 정부 부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한 것으로 나타됐다. 응답자의 58%가 기업경영을 하면서 정부부처를 의식하고 있다고 응답한 반면, 정치권(20%)이나 노조(18%),비정부기구(NGO)(4%)를 의식한다는 비율은 높지 않았다.
CEO들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정부 부처로는 83%가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꼽았다. 이들은 공정위와 금감원의 잦은 호출과 조사가 기업경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NGO 활동에 대해서는 절반 이상인 57%가 NGO들이 상황논리에 맞지 않게 우격다짐식으로 접근해오는 경향이 강하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들은 NGO가 구체적이고도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주주총회에 대해서는 CEO들은 신경은 쓰지만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는 반응이었다.‘주주총회가 경영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느냐’는 질문에 대해 CEO의 72.1%가 다소 영향을 미치지만 지장을 받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준조세에 허리 휜다=70%의 CEO들은 기업들이 준조세로 허리가 휘고 있다고 응답했다.준조세가 과거에 비해 줄었다는 비율은 30%인 반면 줄지 않았다는 비율과 과거보다 더 늘었다는 비율은 각각 56%와 14%나 돼 준조세가 기업경영의 애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CEO들은 기업에 손벌리는 곳이 여전히 많으며 특히 동창회나 협찬을 내세운 공공기관들의 요구는 물론 설립근거가 모호한 각종 환경관련 단체 등이 거액의 기부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아직도 많다고 응답했다.
◇현장경영과 슬림화가 시급하다=CEO들은 미래 경영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경영투명성 제고나 전문경영인제도의 도입보다는 현장중심 경영이나 슬림화를 더 시급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6%가 CEO는 미래의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해 ‘현장중심’ 경영을 선택하겠다고 답했으며 28%는 조직 슬림화를 대응전략으로 내세웠다. 이에 비해 전문경영인을 도입해서 대응하겠다고 답한 비율과 투명경영을 모색하겠다는 비율은 각각 14%와 12%에 그쳤다.
◇여당은 구성원의 자질을 높여야 한다=CEO들은 여당인 민주당의 각종 정책입안 및 집행 능력과 관련,인력보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3분의 2에 가까운 CEO(63%)들은 집권당인 민주당내 인적 구성이 ‘의욕만 앞서는 개혁추진세력 중심’으로 짜여 있다면서 전문성과 현실감 있는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학계나 재계에서 인력을 충원받을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정·관계에서 인력을 수혈받아야 한다는 응답은 5%에 불과,정치인과 경제관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반영했다. CEO들은 집권당의 인사난맥과 관련,검증 가능한 인사를 대상으로 과학적인 검증을 거쳐 임명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남북경협은 지속해야 한다=남북경협은 민족이라는 특수한 관점에서 지속돼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또한 냉전논리가 끝난 마당에 진보도 보수도 없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남북경협 확대를 꾀할 경우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지만 어느 정도 이를 감수하고 남북경협에 투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그러나 IT업계 CEO중에는 시장경제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았다. 특히 6·15 선언 1주년을 맞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이뤄질 경우 남북경협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 jongilk@fnnews.com 김종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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