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신화’가 여기서 막을 내릴 것인가.
정몽헌 회장(MH)은 결단코 노(NO)라고 말한다.
현대그룹의 주력계열사들이 잇따라 새 살림을 차리고 떠나가고 있지만 MH는 좌절보다는 희망을 찾고 있다. 정부의 특혜성 지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도 그룹이 점차 안정감을 되찾고 있는데다 대북사업에 드리운 자욱한 먹구름도 차츰 가시고 있다. 특히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과 강명구 구조조정위원회 부위원장 등 차세대 경영인들이 MH와 호흡을 맞춰가며 재기의 주춧돌을 놓고 있다.
◇2선으로 물러났어도 명예회복 노려=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김재수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 등은 1년전만 해도 현대그룹의 대표적인 ‘가신 3인방’으로 불렸다. 이들은 지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명박, 이내흔, 심현영, 박세용씨 등 현대의 1세대 경영인들에게 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90년대 중반부터 ‘바이코리아 열풍’과 ‘대북사업 실무총책’, ‘구조조정위원회’를 통해 실세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이들은 현대몰락의 장본인으로 지목돼 채권단과 시장에 의해 퇴출되거나 2선으로 물러나있다. 현재 김사장과 김위원장은 현역에서 활동중이고 이회장은 지난해 9월 사퇴한 상태다.
현대아산의 김사장은 성동공고와 서울대 기계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건설에서 기계부 상무, 플랜트사업본부장(전무·부사장)을 거쳐 98년 사장에 올랐으나 지난 4월30일 사퇴했다. 현대의 ‘대북 밀사’로 불리는 그는 98년부터 현대그룹 남북경협사업 단장을 맡았고 99년 2월 현대아산 사장으로 대북사업을 총괄지휘하고 있다.
좌초위기에 빠진 금강산 관광사업의 정상화를 이뤄낼 경우 건설에서 실추된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아킬레스건이자 마지막 회생의 비상구인 대북사업의 총책으로서 그는 아직까지 그룹 핵심부에 서 있다.
중동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71년 현대건설 경리부에 입사한 김위원장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비서출신으로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었다. 지난해 3월 그룹구조조정위원장을 맡아 MH를 대신해 대내외 업무를 총괄했으나 결국 자신의 낙마를 재촉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는 현대건설 지원문제로 상선과 전자로부터 역공격을 받는 등 ‘패착’을 거듭하면서 위상이 급격히 떨어졌다. 현대건설 부사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으로 그룹 계열분리의 마무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대호’를 견인할 선장=현대그룹의 조직과 외형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인맥도 바뀌고 있다.
MH의 장인인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은 최근 현대의 지분변화 과정에서 존재가 급부상했다. 현대건설이 그룹에서 떨어져나가는 대신 현대엘리베이터가 새로운 지주회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현회장의 부인인 김문희씨가 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로 지분 18.57%를 확보하고 있다.
현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타계했을 때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 분향을 했을 정도로 막역한 인척관계를 유지해 왔다. 최근에는 어려움에 처한 MH를 직접 불러 조언도 하고 격려했다는 후문이다.
광주 서공립중학교와 관립 경성 경제전문학교를 졸업한 현회장은 지난 56년 한국은행에서 근해상선㈜ 상임감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해운업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84년부터 현대상선 회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고령(74)임에도 불구, 주간업무보고를 받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은 건설과 중공업, 전자 등이 떨어져 나가면서 미니그룹으로 전락한 현대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할 현대상선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김사장은 MH에게 수익성이 없이 명분에 치우쳐 있는 대북사업 정리 등 그룹의 장래를 위한 직언까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사장은 최근 현대건설 지원방안을 놓고 MH의 영을 거역(?)해 그룹에 충격을 안겼다. 지난 78년 현대건설에서 현대상선으로 옮긴뒤 20여년동안 MH와 같이 움직였고 MH의 배려로 사장까지 오른 그로선 인간적인 고민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그는 그러나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표면적인 명분과 함께 건설은 물건너 갔으니 상선만이라도 살려야 한다고 주장, 실리를 챙겼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회계·재무통으로 꼼꼼한 일처리와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김사장은 해운업체 특성상 높은 부채비율과 환차손, 대북사업 손실 등으로 최근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김사장은 올해를 e비즈니스 사업의 원년으로 삼아 최근 세계 최초의 해운관련 포털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또 중국 인도 중남미 등 주요 항로를 확대,재편하고 연간 200만대의 자동차 운송능력을 갖춘 선박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사장이 되면서 좋아하던 등산과 골프마저 그만뒀다는 김사장은 일벌레로 통한다. 정식 출근시간인 오전 8시보다 1시간30분 일찍 출근해 퇴근시간인 오후 5시30분보다 3시간30분 늦은 오후 9시에 퇴근할 정도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함께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유연함도 엿보인다.
정재관 현대종합상사 사장은 지난 77년 입사이래 전세계 수출현장을 누비며 수출확대에 지대한 공헌을 해 온 인물. 서울고와 서강대를 졸업한 정사장은 공군 50기 장교 출신으로 지난 77년 한국비료에서 현대종합상사로 자리를 옮긴 뒤 지금까지 독일지점장, 홍콩법인장, 중국본부장 등을 거쳐 99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그는 미국 동남아 중국 등 특정지역 편중의 해외시장을 유럽연합(EU), 북미 등으로 다변화시켰다. 지난해에는 단일기업으로는 최초로 250억달러의 수출을 달성하는 뚝심을 발휘했다. 그는 또 해외에 38개 투자법인을 운영하며 해외생산 및 현지판매망을 구축하고 마리브유전개발 등 석유·천연가스·광물자원 등 다양한 자원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종합상사로는 처음 e비즈니스에서 프로젝트 개념을 도입해 인터넷 벤처기업과 함께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대북경협사업의 선두주자로 현재 대북경제협력 관계의 기본토대를 구축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정사장은 다정다감하고 자상한 성격이지만 하나의 프로젝트가 세워지면 찬바람이 불 정도로 강력한 추진력과 뒷심을 발휘한다는 평이다. 현대의 계열분리로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곳이 현대종합상사라는 점에서 정사장의 풍부한 경영노하우가 어떻게 빛을 발할 지 주목된다.
강명구 구조조정위원회 부위원장은 현재 그룹 내부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인물. MH의 의중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해 그룹 안팎을 조율하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재수 위원장이 지난 4월부터 그룹 계열사의 구조조정 마무리 역할만 담당하는 등 역할이 대폭 축소된 상황이어서 그의 행보에 더욱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부위원장은 MH가 직접 키우다시피 한 현대전자에서 지난 92년부터 현대전자산업 서울사무소장을 맡아 뛰어난 관리능력을 선보이며 MH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강부위원장은 프로야구단과 농구단을 국내 최고의 스포츠 구단으로 성장시키는 등 체육분야에서 MH의 대리인 역할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최근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에 대한 MH의 지배력이 사실상 상실되면서 강부위원장은 지난 4월부터 구조조정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강부위원장은 그룹의 생존을 위해 자신이 일궈놓은 야구단과 농구단을 매각해야 하고 하이닉스반도체 등도 계열분리시키면 그가 몸담았던 계열사는 사실상 한군데도 남지 않게 되는 아이러니를 맞게 됐다. 휘문고와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71년 강원은행에 잠시 몸담았다가 72년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금강개발과 서진항공 등을 거쳤다.
‘디지털 탱크’로 불리는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는 불도저 같은 업무추진력과 탁월한 도표분석, 무뚝뚝하지만 섬세한 리더십이 돋보인다. 지난 76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현대강관과 상선을 거쳐 84년부터 줄곧 현대엘리베이터에 몸담아 왔다. 관리부장으로 조직관리의 능력을 펼치기 시작한 후 경리, 자재, 영업 등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를 두루 꿰뚫었다.
현대엘리베이터 창립멤버인 최부사장은 솔직하고 허심탄회하다. 노조 간부들과도 호형호제할 만큼 돈독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화합과 단결을 중시하는 경영을 펼쳐 IMF 때에도 단 한 명의 퇴출 없이 위기를 극복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까지 12년 무분규 사업장에다 1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 kubsiwoo@fnnews.com 조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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