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조중훈 회장은 누구―반세기넘게 수송 외길 세계적 물류회사 일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6.11 06:19

수정 2014.11.07 14:01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은 재계 원로이자 창업 1세대로 평생 수송 외길을 걸어온 우리나라 수송산업사의 거목이다. 그는 남의 흉내를 내는 모방이나 자신이 잘 모르는 사업에 뛰어드는 무모함을 거부했다. 그보다는 남이 안하는 일을 한발 앞질러 벌여왔다. 그가 수송보국의 외길만을 달려온 결과 지금 한진의 깃발은 세계의 하늘과 땅, 바다에서 휘날리고 있다.

광복되던 해인 지난 45년, 25살의 청년 조중훈은 인천에서 트럭 한 대로 한진상사라는 화물운수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총알이 난무하는 월남의 정글에서 군수 물자 수송을 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지난 68년 부실투성이인 대한항공공사(대한항공의 전신)를 인수하면서 물류기업으로의 전기를 마련했다.
몸을 사리지 않은 사업 열정과 두둑한 배짱 경영으로 소형 항공기 10여대에 불과하던 항공사를 30여년 만에 항공기 113대의 세계 10대 항공사 반열에 올려놓았고 87년에는 당시 국내 최대 선사였던 대한선주를 인수해 한진해운이라는 세계적인 해운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수송산업은 인체의 혈맥 같은 것”이라고 곧잘 말하곤 한다. 수송에 대한 신념과 젊은 시절 해운왕을 꿈꾸던 호연지기가 오늘의 한진을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성공한 기업인보다는 민간 외교관으로 불리길 원한다. 프랑스,독일,벨기에,몽골 등 수송을 통한 교역이 잦았던 국가로부터 받은 국가 훈장만도 9개나 된다.

지난 64년 미군 수송용역업을 통해 친분이 두터운 미군 장성을 통해 당시 국교 정상화가 되지 않은 일본으로부터 2000만달러의 경협차관을 성사시켰으며 69년에는 일본으로부터 쌀 60만�U을 들여오는 데 민간 외교 사절로 나서 이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73년부터 한불경제협력위원장을 맡아 항공기 도입 등 양국 유대 강화에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4차례나 훈장을 받았다. 그 자신은 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개최를 반대하는 일부 인사들을 설득해 지지 발언을 끌어냈던 것을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98년 괌 여객기 추락사고, 99년 상하이 화물기 추락사고 등 잇단 비행사고에 대해 최고경영자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99년4월 대한항공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한진그룹은 크게 항공,중공업,해운,금융의 4개 업종으로 분할돼 2세들이 경영을 맡고 있다.

그는 자식농사에 성공한 기업인으로도 꼽힌다.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실무를 겸한 경영자 훈련을 받은 네 아들이 각 계열군에서 뛰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했으며 형제 간 우애가 돈독해 재산 다툼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일 따위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요즘도 조회장과 네 아들들은 자주 한자리에 모인다. 한 계열사 임원은 이 자리의 분위기를 “조회장에 대한 자식들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는 자리”라고 전한다.

그는 81세라는 나이에도 서울 소공동 해운센터 빌딩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한다. 그룹 관계자들은 몇년전까지만해도 그룹 관련 임원회의를 직접 주재하기까지 했지만 최근에는 특별히 그룹 일에 간여하는 바가 없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룹 내에서 아직도 절대적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그는 그룹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네명의 아들과 전문경영인인 계열사 사장들조차도 조 회장의 오랜 경륜으로부터 도움받길 원하기 때문이다.

조회장은 “예술가에게 정년이 따로 없듯,기업인에게도 정년이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비록 잇단 항공사고에 책임을 지고 회장직은 물러났으나 네 아들이 세계를 호령하는 수송왕국 한진을 완성할 때까지 그의 정년은 계속 연장될 것이다.

/김종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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