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국가경쟁력을 키우자-금융] ‘초대형 은행’ 많이 생겨야

박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6.21 06:22

수정 2014.11.07 13:51


지난 3년간 추진돼온 금융개혁은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성과가 있었으나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혁신이 미흡했다는 게 국내외의 일치된 평가다. 그만큼 금융시스템의 국가경쟁력은 아직 합격점에 들지 못한 셈이다.

정부의 금융개혁은 일단 하드웨어 측면에서 개혁의 기본틀을 마련하는 성과를 거뒀다. 정부는 19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지난 4월 말까지 합병,계약이전(P&A),청산 등의 방식으로 572개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했다. 그리고 부실금융기관에 4월 말까지 137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자본을 확충했다. 이어 충당금적립제도와 적기시정조치제도 등 건전성 감독기준을 국제기준(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선,추가부실 발생을 사전에 막는 장치도 마련했다.
또한 한빛은행 등 부실금융기관을 묶어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국민과 주택 등 대형 우량은행간 합병을 추진,금융시장의 대형화와 겸업화 기반을 닦았다.

이와 함께 ▲새로운 자산건전성 분류기준(FLC) 제도의 도입 ▲예금부분보장제도로의 전환▲금융기관 수익성 지표의 분기별 공표제 등을 통해 상시적인 금융구조조정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정부는 자평하고 있다.

이같은 제도개혁은 금융시장을 빠르게 안정시키고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이는 한편 건전성 감독제도의 강화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금리·환율·주가·물가·성장률 등 제반 거시지표가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일안에 회복된 게 그 증거다. 지난 97년 12월23일 연 31.11%까지 올랐던 금리는 지난 달 말 7.37%로 안정됐고 환율도 달러당 1956원에서 1283원으로 하락했다.97년12월12일 351까지 곤두박질쳤던 주가는 600선을 넘었고,98년 연 77.5%까지 올랐던 소비자 물가는 지난 해 2.3%에 이어 올해는 3% 후반에서 4%초반대에 머물 전망이다.

한마디로 금융개혁은 금융시장에 퍼져있던 불확실성을 상당부분 제거해 자금중개기능을 회복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금융기관도 경영성과에 따라 퇴출될 수 있다는 인식이 정착되는 계기로 작용,책임경영 의식을 심어주었다. 그 결과 대출관행이 개선되고 수익성 위주의 경영전략이 수립되며 조직구조의 선진화,성과중심의 조직문화쪽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계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지난 달 28일 “ 한국이 금융개혁과 관련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며 아시아 국가중 가장 많은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하고 “그러나 부실채권 문제의 해결,부실금융기관의 통폐합,선진 금융기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역량구축 등에 있어 더많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 역시 “비은행 금융기관의 부실로 금융시스템이 여전히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다우 존스도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있어서의 변화 등으로 한국의 미래는 낙관적”이라면서도 “은행의 여신관행이 기업의 상황보다는 평판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요컨데 상당한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흡하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금융기관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은 국내에서도 여전하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경영정상화가 미흡하고 구조조정 주체가 될 금융기관의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한데다 자율과 책임의식 부족으로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게 정부나 금융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우리 금융기관들이 안고 있는 문제중 첫번째로 꼽히는 것은 규모가 작아 생산성 향상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금융구조조정 덕택에 은행의 1인당 자산이 97년 53억원 수준에서 지난 해 83억원 수준으로 크게 증가하고 국민·주택은행의 합병으로 자산규모 1300억달러 수준의 세계 60위권의 대형 금융기관이 탄생하게 된 점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세계 금융산업의 대형화 추세에 비춰볼 때 국내 금융기관의 규모는 주요국에 비해 아직도 작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세계 100대 은행에는 미국은행이 18개,일본은행 19개,독일은행 10개가 각각 포함돼 있지만 한국 은행은 고작 2개 뿐이다. 국내 상위 5대 은행의 자산규모는 미국 상위 5대 은행의 10%수준에 불과하다.

수익률도 여전히 낮다. 은행의 적자규모는 점차 감소추세이나 ROA(자산이익률)가 4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선진국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수익구조가 예대마진 위주인 반면 부가가치가 높고 지식·기술집약도가 높은 인수·합병(M&A),유가증권 매매 등을 통한 수수료 수입비중이 낮은 게 주된 이유다. 국내 금융기관의 수수료 비중은 24.6%로 미국(36.1%)과 영국(32.3%)에 크게 뒤쳐지고 있다.

외국에 비해 평균 5배 이상 높은 무수익여신 비율도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근본원인으로 지적된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무수익여신 비율은 지난해말 현재 6.6%로 독일(1.1%)의 6배나 된다.

게다가 위험관리 역량이 낮은 탓에 담보대출비율과 부실채권 비율이 높아 경영성과가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다. 우리 금융기관들의 신용대출 비중은 50.1%로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60%와는 비교가 안된다. 위험관리 능력 부족에 따른 수익저하를 보전하기 위해 금융기관들은 이자와 각종 수수료에 비용을 떠넘기게 되고 이는 곧 마진축소로 귀결된다. 지난 해 은행의 명목 이자마진은 2.72%포인트였지만 대손충당금,경비 등을 뺀 실질 이자마진은 -1.04%포인트였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8일 열린 금융학회 정기총회에서 “이같은 금융의 경쟁력 수준으로는 세계화 시대에 새로운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물경제와의 조화로운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진 부총리는 ▲전자화폐 및 전자상거래를 통한 금융기관간 진입장벽 붕괴 등 금융산업의 패러다임 변화 ▲각국 증권거래소 등 국제 금융시장의 통합 ▲기업의 직접금융 의존도 확대 등 금융의 증권화(secrritization) 등 금융여건의 변화에 대응하는 게 금융기관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업무제휴 등을 통한 수익기반의 확충,위험관리기법의 개발,성과중심의 책임경영체제를 정착 등 소프트웨어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진 부총리는 강조했다.


정부는 높은 수익성과 생산성을 보이면서 국제 경쟁력을 가진 금융산업이 육성될 수 있도록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투자은행을 육성하는 한편 부실기업을 신속히 처리하는 등 여건조성에 힘쓰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 john@fnnews.com 박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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