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신기술 21세기를 달린다―특별기고] 기업이 확 달라졌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1.06.25 06:23

수정 2014.11.07 13:48


우리 경제가 IMF 관리체제에 돌입한지 3년 반이 지났다. 개혁이 잘됐느니 안됐느니 말도 많지만, 아찔했던 97년 말의 국가부도 상황에서 그래도 이 정도로 우리 경제가 안정을 찾은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은 역시 대단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개혁의 순서 및 핵심을 제대로 다루었느냐는 문제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남들은 적어도 5년 내지 10년 이상이 걸리는 위기 극복 과정을 단 몇 년만에 초스피드로 해내지 않았는가.

우리 민족의 급한 성질 때문에 이처럼 단기 극복을 할 수 있었던 반면, 급하다 보니 개혁에 대한 마스터플랜도 없이 허겁지겁 추진돼 부작용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정부가 내건 기업, 금융, 공공, 노동의 4대 개혁 성과를 평가할 때 어느 부문이 가장 개혁을 많이 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기업부문을 꼽는데 이견을 보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을 것이다. 반면 개혁이 미진해 더욱 강화해야 할 부문을 꼽는데도 대기업개혁을 얘기하는 사람이 아마 가장 많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가장 개혁을 많이 했으니 이제 타겟을 다른 부문으로 돌릴 만도 한데 기업개혁을 가장 더 해야 한단다. 위기의 주범을 대기업으로 여론몰이 한 결과다.

사실 위기의 원인을 따지자면 대기업 뿐 아니라 정부, 금융기관, 국민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4대 부문 이외에도 더욱 근본적인 정치, 교육, 정부개혁 등은 개혁대상에서 조차도 빠진 것이 현실이다.

기업개혁이 미진하다고 하지만 우리 기업은 자의 반 타의 반 지난 3년 반 동안 참 많이 변했다. 이처럼 기업이 변한 것은 정부의 강제적인 제도 도입과 정책에 의한 것도 있지만 기업 스스로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친 결과다.

IMF 이후 우리 기업이 달라진 것 중 가장 큰 변화는 역시 경영철학을 꼽을 수 있다. 과거의 ‘대마불사, 즉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아무리 덩치가 커도 기업은 이익을 내지 못하고 건전한 재무구조를 갖지 않으면 망한다’는 극히 당연한 철학으로 회귀한 것이다.

과거 부채에 의해 자산을 늘리고 수익에 관계없이 매출을 늘려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경영, 기술보다는 설비투자를 확대하는 경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부의 부채비율 축소 정책, 은행의 자산건전성 강화 정책, 이자보상배율 적용 등으로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이 재무구조 건전성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덧붙여 수익을 내지 못하고 현금흐름이 원활치 않은 기업은 재무구조의 건전성만으로 버티기 힘들다는 교훈도 함께 얻었다. 즉 재무제표 대변의 구성물인 부채와 자기자본의 관계가 건전해야 하며 차변에 위치한 자산의 효율적인 운용을 통한 손익계산서의 건전성으로 돌아온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지만 과거에는 형식적인 것으로만 여겼던 부분이다.

경영철학의 변화와 더불어 또 다른 커다란 변화가 기업경영의 투명성이다. 투명성은 크게 지배구조 투명성과 회계의 투명성으로 구분되는 바, 회계의 경우 회계기준이 소위 미국식 회계기준을 일컫는 국제적 기준으로 개선됐고 기업의 외부 회계감사 관련 법 제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여 과거와 같은 형식적인 외부감사는 불가능해졌다. 또한 내부 감시 시스템도 강화되었다. 의무적으로 감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고 감사위원회는 사외이사들로 채워야 한다. 이제 과거와 같은 분식회계는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지배구조 또한 상당히 개선됐다. 과거와 같은 유명무실한 이사회는 자취를 감추고 사외이사를 50% 이상으로 이사회를 구성해야 하며 사외이사들의 이사회 참석률도 62%에 달할 정도로 이사회가 진정한 이사회 역할을 수행하도록 자리 잡아가고 있다. 자연히 과거 총수 1인이 지시하고 결정하는 시스템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더욱이 소액투자자의 권한이 국제기준을 넘어설 정도로 강화되면서 경영을 감시하고 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공정거래법에서는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명분 아래 내부거래 규정을 강화하고 감시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다시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기업은 이제 2중 3중의 그물로 투명성에 관한 각종 규제와 법으로 속박당하고 있다. 너무 지나치고 국제적 기준을 훌쩍 넘어서 기업 경영의 창의성, 효율성, 자율성을 해칠 정도다. 자율적인 투명 경영이 정착되면 시장이 대신해야 할 부분이다.

정부가 법 규제의 양산에 몰두하지 말고 시장이 시장의 역할을 하도록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시장이 시장의 역할을 할 때 진정한 시장경제가 이루어지는 것이지 정부가 시장역할을 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질적경영으로의 전환을 들 수 있다. 전통적인 설비투자에서 기술에 투자하는 벤처출자투자, 전통적인 상거래에서 전자상거래, 국내생산에서 다국적 생산화를 촉진하고 있다.
이제 우리 기업은 우물안 개구리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우물을 깨고 있다. 그런데 우물은 정부에도 국민에게도 있다.
모두의 우물을 같이 깨야 한다.

/김석중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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