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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소설-에덴의 북쪽] 서랍 속의 반란 ⑩


“요즘은 한집에서 살지 않아서, 부딪칠 염려가 없습니다.”

“한집에서 살지 않는다구?”

“주과장이 원룸으로 이사를 했으니까요.”

그 대목에서 주석민이 술잔을 비우고 나서, 말을 계속한다.

“자, 이제 화제를 바꾸죠. 술 자리에 가족이야기가 끼면 여간 쑥스럽지 않더라구요.”

“좋아, 좋고 말고.”

화제를 바꿔 경영학과 선후배들의 근황이며, 특히 장호림 교수와 동남그룹의 밀착 관계를 화제삼아 마신 술이 어느새 양주 한 병에 가깝다.

주석민의 주량은 측량하기 힘들다. 나이로 보아 한창때이기도 하지만 원래 술에 탐닉하는 체질 같다.

강선우가 한잔 마실 때 주석민은 두잔이다.

그것도 갈리시아 위원장처럼 받았다 하면 원샷으로 척척 처리해 버린다. 술잔을 오래 들고 만지작거리지도 않는다.

아무리 나이나 체력이 받쳐준다고 하지만, 원래 술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두 병째 술병의 마개를 땄을 때 주석민의 혀는 조금씩 굳어가기 시작한다.

알코올로 혀가 굳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말이 허해진다는 뜻이다.

자제력이 마비된다기보다 말문을 제어하고 있는 태엽이 풀린다고 할까.

물론 주석민은 대학 직계 후배인 데다, 동남그룹의 성골, 이른바 김판수 회장 계열의 오른팔로 분류되는 오종근 사장의 비서이므로 필요 이상으로 말을 가려하거나, 인색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긴 해도 일급 비밀에 해당되는, 이른바 기밀상황을 제 스스로 공개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객기가 아닐 수 없다.

“선배님, 우리 회장님 말입니다. 이번에 얼마나 번 줄 아십니까?”

“우리 회장님이 돈을 버셨다구?”

강선우가 묻자,

“이건 밖에 절대로 나가서는 안되는 극비중의 극비인데… 하긴 선배님도 다 아시고 계실 텐데요 뭘.”

주석민이 따지고 보면 비밀도 아니라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내가 알고 있다니?”

강선우가 주석민의 빈잔에 술을 채우며 말을 잇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선배님이 누굽니까? 회장님을 가장 측근에서 모시는 수행비서 아닙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왜 있어? 수행비서라도 모르는 부분은 모를 수 있다, 이거야.”

“저야 한치 건너 두치, 그것도 비서 아닙니까. 나같은 사람도 아는데, 선배님이 왜 모르겠습니까?”

“바람 그만 잡고, 얘기해 봐. 회장님이 무슨 돈을 얼마나 어떻게 벌었는지.”

주석민이 또 원샷으로 목줄기에 털어 넣고, 얼음물을 머금어 클클 가신 다음, 입을 연다.

“정확한 액수로 1018억4000만원을 벌었습니다, 그것도 1주일만에.”

“1주일만에 1018억원을 벌었다구?”

“그렇다니까요.”

“아무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1주일만에 어떻게 1018억원을 벌어?”

강선우가 쐐기를 박는다.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겁니까?”

도리어 주석민이 큰소리다.

“그래도 믿을 수 있을 만한 얘길 해야지.”

“크라쿠프자동차로 그렇게 벌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크라쿠프자동차로?”

“회장님은 크라쿠프자동차 인수가 결정되기 1주일 전에 우리 동남증권을 통해, 동남자동차 주식 500억원어치를 사들이게 했거든요. 물론 공식 채널이 아닌, 비공식 창구를 통해, 그것도 일시에 마구잡이식으로 끌어모은 겁니다.


강선우가 무릎을 때리며,

“아, 그래. 동남자동차 주식이 3배로 올랐다더니 바로 그거구나!”

하고 큰 소리쳐 마지않는다.

“이제, 이해가 가는 모양이군요?”

주석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강선우를 그윽이 바라본다.

“아, 그랬었구나. 그렇게 해서 500억원이 세 곱으로 늘어나 1000억원을 벌게 됐구나!”

강선우는 계속 감탄에 감탄을 보탠다.

/백시종 작 박수룡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