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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소설-에덴의 북쪽] 서랍 속의 반란 ⑫


“그거야… 세상이 다 아는 프로급들인데, 서툴게 증거를 남기면서 작업했겠어? 안그래?”

주석민이 동조해 줄 것을 기대하며 강선우가 말했지만 그는 어림없다는 식으로,

“아무리 완벽을 기했다고 해도 흔적은 남기 마련입니다.”

라며 비관적인 해석을 거침없이 쏟아버린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주석민이 단언한다.

“그 방법이 뭔데?”

“그쪽에서 칼을 들지 않도록 회유를 하거나… 자수를 하거나….”

“자수?”

“솔직히… 김회장님 혼자 착복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이건, 적어도 회사 차원에서 공적으로 처리하는 결단을 보여야….”

“이것 봐.”

강선우가 주석민의 말허리를 자른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며 계속한다.

“그건… 사태를 잘못 본데다가… 잘못 판단한 거야. 흔히 나무만 보고 숲을 볼 줄 모른다는 식으로… 설사 회장님 계좌에 돈이 들어갔다 해서, 회장님이 개인 영달을 위해 돈을 쓸 것이라고 단언하는 그것부터 잘못된 판단이란 말이야. 왜냐하면 우리 김판수 회장이 그처럼 양식없는 오너가 아니기 때문이야. 만약 개인 영달을 위해 돈을 모았다면 회사와 결별하고 말았을 거야. 아니, 벌써 쫓겨났겠지. 너도 알다시피 조국환 부회장이 어떤 사람이야? 서로 약점 잡히지 않으려고 팽팽히 맞서왔기 때문에 오늘의 동남이 존재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뭔가 큰 일을 하시기 위해… 소위 말하는 비자금으로다가 미리 예치해 놓았다… 그렇게 생각해야 옳은 해석이고 옳은 판단이다 그 말이야, 내 말은!”

그 자신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선우는 열정적이다. 하지만 누군가 정색을 하고 김판수 회장을 그토록 신뢰하고 존경하느냐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다라고 대답할 계제가 아니다. 오히려 잘 모르겠다가 정답이다.

그래서 주혜경이 국제전화로 김판수 회장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을 때도 별 저항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강선우다. 물론 긍정적인 수용이라기보다 그럴 수 있다는 모호한 판단이 앞섰다고 해야 옳다. 예컨대, 적으로 간주했던 그레이스 최와의 전격적인 야합이 그러하고, 예상을 깨고 에니카를 크라쿠프자동차 부사장에 임명한, 이를테면 상식을 벗어난 돌발행동 따위가 그런 것이다.

한데, 지금 이 순간은 다르다. 주석민의 날카로운 지적에 웬일인지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 않다. 이른바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함부로 단정짓고 싶지 않는 것이다. 뭐랄까. 주석민의 공격이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강선우의 방어도 그만큼 철통 같아진다고나 할까.

“회장님의 비자금에 대해… 이제 이해가 되는 모양이구나.”

강선우가 마치 확인하는 기분으로 입을 연다.

“아직은요.”

주석민이 대답한다.

“아직은요라니?”

“선배님이 말씀하신 비자금… 아직 이해가 안간다는 얘깁니다.”

그토록 세세히 알아듣게 설명했는데도, 주석민의 기세는 죽지 않는다. 죽기는커녕 더욱 등등하게, 흡사 조롱하듯 말을 잇는다.

“또 다른 외국기업을 인수해서 관련회사 주식을 허공중에 띄우고, 그 시세 차액을 따먹기 위한 비자금 말입니까?”

주석민이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며 계속한다.

“안됩니다.
그런 비자금은 불법이고 착복입니다. 결국 개미군단의 간을 꺼내먹는 죄악이다, 이겁니다!”

강선우도 술잔을 단숨에 비운다. 그리고 스스로 잔을 채운 다음, 거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이봐, 주석민!”

“예, 선배님.”

“넌 지금 어느 편에 서 있는 거야?”

“저야… 당연히 오종근 사장님이죠.”

“오종근 사장이라면, 김판수 회장 라인 아냐?”

“맞습니다, 그럼요. 오사장님은 자타가 공인하는 김판수 회장 오른팔이죠.”

“그걸 알면서 감히 김판수 회장님께 착복이니, 불법이니, 함부로 운운할 수 있어? 그게 교양 있는 비서가 할 수 있는 얘기야?”
/백시종 작 박수룡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