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노대통령의 월街방문을 제안

임관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3.05 09:12

수정 2014.11.07 18:43


주식시장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안팎 악재에 불안한 수급,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경기전망, 질식할 정도로 꽉 막혀 있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이 난세를 풀어갈 뽀족안 묘책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우리기업들의 사상최대 순익 잔치도 이미 막을 내린 분위기다. 기업들은 열심히 벌어 주가에서 까먹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인들은 올들어 연일 주식을 팔아치우며 ‘셀 코리아(Sell Korea)’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4000억원 가까이 팔아치웠다. 지난해 3월과 비교하면 거래소시장에서만 3조원어치나 팔아치웠다. 선물시장까지 포함할 경우 4조원이 넘는다.

국내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예탁금은 계속 줄어 7조원대로 내려앉은지 이미 오래다. 간간이 들어왔다 나갔다하는 단기차익용 자금 이외는 주식시장에서 장기투자용 자금을 찾기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시중 부동자금 370조원, 이 규모로 보면 주식시장은 벌써 1000포인트를 넘어섰어야 하지만, 아무도 이 거대한 공룡자금이 어느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돈이 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도 지난해 거둔 순이익을 금고 속에 보관하고 있을 뿐 투자를 꺼리고 있다.

무엇이 이 돈들을 고여 있게 만드는 것일까. 불확실성이다. 그나마 불확실성이 이 공룡자금의 발걸음을 무겁게 해 부작용을 줄이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심각성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해소시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데 있다. 국내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외부요인에 의한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외풍이라는 얘기다. 이미 ‘묵은 악재’가 됐지만 이라크전쟁이 여전히 세계증시를 억누르고 있다. 2001년 9·11테러이후 이어지고 있는 전쟁신드롬으로 세계증시는 지칠대로 지쳐 있다. 세계경기도 전쟁공포로 통제불능의 최악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라크전쟁이라는 외부악재에 이어 터져나온 북한핵 문제는 이제 시작하는 느낌이다. 북한핵 문제가 외국인에게 국내주식을 팔 동기를 부여했다면 주한미군의 재배치 문제는 국내증시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또한 느슨해진 구조조정도 문제다. 은행권 구조조정의 완결편인 조흥은행 매각에 외국인들이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조흥은행의 매각을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로 여기고 있을 정도이다. 증권사의 구조조정은 더 만만디(慢慢的)다. 현대증권, 대우증권, 대한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처리된 것이 없다.

외국인들이 3년만에 IMF관리체제를 졸업한 한국에 대해 “변심했다”며 다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또한 이같은 불확실성으로 그동안 잘 진행되어온 외국사와의 매각작업들도 주춤거리고 있다.

과연 구조조정을 지연할 만큼 우리경제의 펀더멘털은 개선되었는가. 기업들의 수익성과 재무구조를 보면 97년 외환위기 이후 몰라보게 달라졌다. 외환위기의 아픔을 앙갚음하듯 외환보유고도 1300억달러를 넘어섰다. 외형상은 안정적이다.

하지만 올들어 상황은 싹 바뀌었다. 2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물가는 고공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소비자신뢰지수도 급락세를 보이며 그동안 경기를 떠받쳤던 내수위축을 가시화하고 있다. 급격한 가계대출로 가계신용 붕괴라는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현재의 경제체력으로 닥쳐올 외풍을 견뎌낼 수 있을까. 국내외 민간경제연구소는 M자형 경기전망을 하며 더블딥(경기의 이중 침체) 우려를 경고하고 있다. 미국 월가의 한국증시에 대한 인식은 더욱 심각하다. 그래서 이라크전쟁이 증시에 단기호재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올해 한국증시의 MSCI(모건스탠리 캐피털 인덱스) 선진국지수 편입은 이미 물건너 갔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 외국인이 더 이상 이탈하지 않도록 내부에 대한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 13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에 자만하기는 이르다. 만약 외국인들이 썰물처럼 증시에서 이탈한다면 이 수치 역시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열심히 외국인 투자가들을 찾아다녔던 모습이 떠오른다. 세일즈 외교를 외치며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연예인을 만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김 전대통령의 활동에 재계는 큰 힘을 얻었었다.


새 시대를 열겠다는 새 정부도 이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세일즈 외교는 한국의 숙명이라는 점도 거듭 강조한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국의 월가를 방문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본다.

/임관호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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