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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시론] 동북아허브, 시간이 없다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모처럼 미래지향적인 단어가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 희망적인 미래의 모습을 담은 야심찬 비전이어서 반갑다. ‘넛 크래커’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물건이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산업경쟁력을 지겹도록 대변해 온 터라 그 반가움은 더욱 크다.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 이는 넛 크래커에 끼인 한국이 캐스팅 보터(casting voter)로 거듭 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비전에 대해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북아 허브의 중심개념인 경제특구만 해도 그렇다. 특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여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러나 수천만평의 땅을 특정 업종(물류, 금융, IT 등)이나 기능(생산, 연구개발 등)만으로 채우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즉 경제특구에는 다양한 업종과 다양한 기능이 흡수·배치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what)를 가지고 논쟁하기보다는, 특구에서 활약할 손님들을 어떻게 특구로 불러모을 것인가(how)에 대해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특히 외국의 기업, 대학, 연구소들을 유인할만한 매력 포인트를 발굴하는 것이 관건이다. 싱가포르, 홍콩, 중국 등 경쟁국가들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갖가지 우대조치는 기본이요, 여기에다가 우리만이 제시할 수 있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손님이 찾아올 리가 없다.

시급한 것은 공무원들이 ‘고객감동’의 마인드로 무장하는 일이다. 싱가포르는 미국의 정반대 쪽에 있지만 9·11 테러사건 때는 주룽산업단지에 특별경계령을 내려 입주기업들을 안심시켰다.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해외를 누비고 다니며, 외국기업의 직원들이 파워포인트 교육을 받아도 교육비를 지원해 준다.

대만은 지난해 초 건국 이래 최악의 가뭄으로 고생했지만, 대만의 실리콘밸리라는 신주단지는 물 걱정이 전혀 없었다. 대만 정부가 수도인 타이베이에는 단수조치를, 신주단지 주변의 논에는 휴경조치를 내려 신주단지의 공업용수를 확보해 준데다, 수차(水車)를 총동원하여 가뭄이 덜한 남쪽 지방에서 끊임없이 물을 길어 날랐던 것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소니가 물류창구를 세울 때 세무서 직원들이 찾아와 절세(節稅)방안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드는 세무서가 네덜란드에서는 서비스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가히 ‘고객유치 전쟁’이라 할 만한데, 최근에는 일본마저 여기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해 발표한 ‘경쟁력 강화를 위한 6가지 전략’을 보면 ▲나라 전체를 고부가가치 거점화한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늘린다 ▲서비스경제화와 고용기회의 확대를 도모한다 ▲국내외 자본·두뇌를 유치한다 ▲동아시아 자유 비즈니스권을 형성한다 ▲21세기 신시장을 창출한다로 되어 있다. 우리 전략과 너무나 똑같다는 점이 우리를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한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인가. 외국인들이 생활하기에 편한 나라인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면 외국인투자가 몰려와야 한다. 그러나 외국인 직접투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2000년 기준)을 보면 싱가포르 108%, 네덜란드 67%, 아일랜드 62%, 중국 32%인데 비해 한국은 9.3%에 불과하다. 우리의 생활여건이 외국인에게 얼마나 우호적인가 하는 것은 관광객의 수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2001년 한해동안 입국한 외국인관광객은 홍콩 1373만, 네덜란드 1000만, 싱가포르 752만, 아일랜드 675만명인데, 한국은 불과 515만명이다.

시간이 없다. 빨리 진용을 갖추어 외국기업, 외국대학을 찾아 나서야 한다.
아일랜드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유치하기 위해 10년이나 공을 들였다. 공무원 조직이지만 오로지 고객감동을 위해 존재하는 홍콩투자개발청(invest HK) 같은 조직이 필요하며, 고객을 유치하고 감동시키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평가와 보상을 차별화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피부색깔이 다르면 한국인으로 귀화해도 차별하는 나라가 아닌가.

/윤종언 삼성경제연구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