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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에서] 경제비전이 필요하다


‘아젠다’란 경제주체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비전 또는 패러다임이다.

그럼 새 정부 경제 아젠다는 무엇일까.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건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즉 재벌개혁, 투명성 강화 등등 너무 다양하다. 그래서 해석도 제각각이다. 이는 경제주체들의 에너지를 결집시킬 비전이 분명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건설’은 현재로선 막연히 “선진국으로 도약하자”는 정도로 시장은 받아들이고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도 모호하다. 단지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 상속세 완전포괄주의 등 정황을 살펴 “재벌개혁이 새 정부의 아젠다인 것 같다”고 짐작할 정도다.

과거 정부의 아젠다는 성패를 떠나 비교적 분명했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 아젠다가 ‘구조조정’이란데 주저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김영삼 정부에선 ‘시장개방과 규제완화’였다. 그래서 이들 아젠다엔 힘이 실렸고, 시장도 한목소리를 내면서 동반자의 길을 걸었다.

한국경제는 지금 극심한 불안 기류에 휩싸여 있다. 소비자들은 주머니를 열지 않고, 기업들은 일감이 줄어 들었다. 코스닥시장의 추락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아직까지 버팀목이 되던 수출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이라크전쟁이 끝나면 경기가 괜찮아질 것이라던 전망도 점차 바뀌고 있다. 원유가 상승의 영향으로 물가는 크게 오르고 침체가 깊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이때 새 정부와 재계가 만나 경제활성화 방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로운 21세기 한국사를 쓰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고건 총리, 김진표 부총리 등이 직접 나서 경제주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이 더욱 반갑다.

난장이 돼도 좋다. 이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한다. 재벌에 대한 검찰 수사, 공정위 조사예고, 동북아 경제중심지 건설 등등.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정부와 재계는 이번 기회에 가슴을 열어놓고 그간 쌓인 앙금을 털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바로 위험수위를 넘은 경기침체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경제불안의 주요인이 외생변수에 의한 것인만큼 정부 차원에서 당장 해법이 나오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내적인 불확실성부터 제거해 투자를 유인하는 정책은 더욱 시급하다. 시장여건을 감안한 현실적인 정책을 수립,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세부계획을 이행함으로써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긴요하다. 그래야만 국민에게 봄의 기운을 불어 넣어줄 수 있다.


“본디 땅 위에 길이란 게 없으며, 걷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길이 되는 법이다.”

국민과 함께 걸어가는 21세기의 새로운 길을 참여정부가 열어가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봄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린 아침에 루쉰(魯迅)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중국에서 ‘창작판화운동’를 이끈 인물인 ‘아큐정전’의 작가다.

/ sejkim@fnnews.com 김승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