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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변화없는 ECB 화폐정책

최승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5.15 09:31

수정 2014.11.07 17:40


지난주 목요일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이사회는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조처를 취했다.

이에따라 유로지역의 기준금리는 지난 3월부터 유럽화폐통합 이후 최저수준인 2.5%에 머물게 됐다. 이 조처에 따르면 ECB는 현행 화폐정책 운영전략은 계속 유지하는 대신 외부에 대해 자신의 정책전략을 이해시키고 정책결정을 논증하는 과정을 지금과는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개선할 방침이다.

지난 98년 창설된 이래 ECB의 화폐정책은 무엇보다도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첫째로 비판되고 있는 것은 ‘두 개의 지주전략(two-pillar strategy)’에 기초한 ECB의 화폐정책 운영체계다. 첫째 지주는 ECB가 M3 통화량 등 통화지수를 참고지표로 삼아 화폐정책을 운영함을 가리킨다.
이것은 독일연방은행의 화폐정책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 ECB는 M3 통화량의 연간 증가율 4.5%를 가격안정의 기준치로 보고 있다. 통화주의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는 이 전략의 배경에는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화폐현상, 즉 화폐량의 증가는 곧 물가상승이라는 관념이 깔려 있다.

둘째 지주는 직접적으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제시하는 화폐정책 전략이다. 이 전략에 따라 ECB는 실물경제 상황, 환율, 임금 등 폭넓은 경기지수를 토대로 하여 인플레이션을 전망하고, 이를 정책결정의 준거로 삼고 있다.

이같은 ECB 화폐정책 운영의 이원체계는 명목기준지표에 대한 혼란을 초래함으로써 금융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최근 유로지역의 M3 증가율이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는 7.5%에 달하는 반면, 인플레이션율은 감소하고 있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두 개의 지주전략 추구는 종종 모순된 화폐정책을 낳기 때문이다.

특히 첫째 지주전략이 비판의 초점이 되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화폐량 조정을 통한 인플레이션 정책의 불안정성이 지적되어 왔다. 이런 이유로 지난 1월 IMF는 ECB에 대해 둘째 지주에 초점을 맞춘 인플레이션 타기팅 정책을 추구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두번째 비판은 ECB의 가격안정의 정의다. 유럽연맹 조약 105항에 의거해 가격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ECB는 가격안정을 인플레이션율 2% 이하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목표를 인플레이션율 2% 이하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긴축적인 정의라고 비판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품질변동 오차, 제품대체 오차, 구매점 대체 오차 등으로 인해 물가지수 통계에 1∼2%의 상향편의가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이 목표치는 제로 인플레이션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축적 목표는 ECB의 행동반경을 스스로 제약함으로써 특정 경기상황에서 오히려 역기능적 정책을 강제할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2% 이하의 목표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정상적 경기국면에서 가격변동을 억제함으로써 경기상승을 초기에 교살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일찍이 케인스는 이러한 정책을 ‘환자를 죽여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현재 ECB가 추구하고 있는 2% 제한은 경제가 숨을 쉬기에는 지나치게 낮은 수치라는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ECB는 종결된 전략심사에 따라 현행의 화폐정책 전략을 고수할 방침이다. ECB 수석 경제학자 오트마 이싱은 수정보완된 전략을 프리젠테이션하는 자리에서 “두 개의 지주전략은 ECB의 품질마크가 됐다”고 말했다. 또 2% 이하라는 가격정의 역시 고수될 방침이다.

그러나 이싱은 통화 분석은 중장기적 관점을, 실물경제 분석은 단기적 관점을 목표로 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으며, ECB가 디플레이션 위험에 대해 눈을 감고 있다는 추측을 예방하기 위해 가격안정을 추구함에 있어 중기적 관점에서 가격상승을 2%에 ‘근접한’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ECB 총재는 월례 기자회견에서 정책결정과 관련해 실물경제 측면에서의 가격분석, 통화적 측면에서의 인플레이션 분석, 종합적인 평가(크로스 체킹) 등의 순서로 두 개 지주전략간의 상호보완적 성격을 명료하게 밝힐 방침이다.
또 ECB는 더이상 M3 통화량 증가에 대한 연간 심사를 하지 않을 계획이며 이를 통해 참고지표가 목표치로 해석되는 오해가 방지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새로 보완된 ECB의 화폐정책 운영전략은 한편으로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을 더욱 명료화한 것일 뿐 정책기조에 있어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새로 보완된 전략은 ECB가 중단기적으로는 실물경제에, 장기적으로 통화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박경순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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