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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경제이슈-眞露 어디로 가나] 안팔고 법정관리로 끌고갈듯

노종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5.20 09:32

수정 2014.11.07 17:37


지난 14일 법정관리가 결정된 진로사태가 노동조합의 집단 반발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회사측이 법정관리 결정일 당일 바로 항고한데 이어 노조측은 이원 관리인의 출근을 저지하고 법원의 결정에 의혹을 제기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진로가 앞으로 거쳐야 할 재산가치실사, 제3자 매각 등의 과정에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회사와 노조측은 우선 항고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재판부의 결정에 의혹 등을 제기하며 2심에서 1심의 결정이 바뀌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노조, 법정관리 강력 반발=진로 노조는 ‘법원이 법과 양심보다는 사적친분과 로비에 의해 민족기업을 법정관리로 결정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으로 법원을 압박하고 있다.
노조의 주장은 서울지법 파산부의 판사, 롯데그룹의 담당변리사, 골드만삭스 세나인베스트먼트의 소송 대리 변호사, 진로쿠어스맥주 전 대표 등이 세나인베스트먼트의 법정관리 신청(4월3일) 한달전인 지난 3월8일 경기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긴 것에 근거하고 있다. 진로쿠어스맥주 전 대표는 진로가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법정관리인으로 거론돼왔다고 노조측은 주장했다. 노조는 사적인 친분과 로비에 의해 결정된 이번 법정관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고 재판부에 이같은 내용을 전달하는 등 완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당사자들은 평소 친분이 있는 S대학 법학과 70년 동기 4명이 모인 것으로 비용도 똑같이 나눠냈다며 노조측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골프 티업시간이 공무원 근무시간인 토요일 낮 12시30분인데다 골드만삭스 세나인베스트먼트의 소송대리변호사가가 이미 사건을 수임한 이후여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골드만삭스측 소송대리변호사는 법정관리신청 직후 법원에 사입계를 제출했다.

노조는 또 이같은 결정에 의해 진로 법정관리인으로 지정된 이원 전 현대 아산 개성사업단장의 출근을 1주일째 막고 있다. 지난 15일 출근을 저지한 데 이어 20일까지 노조원들이 정문을 봉쇄, 이 관리인은 회사 정문만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지속적인 법정관리 가능성=그러나 법정관리에 대한 항고가 받아들여진 사례가 없고 노조측의 의혹제기도 법정관리인가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진로는 오는 6월말까지 실사를 마친 뒤 7월 이후 법정관리가 인가돼 올해 말쯤 매각이나 법정관리 지속 등의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측의 강경 분위기와 달리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대세를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인수기업과 고용안정에 더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로는 앞으로 어디로 갈까. 제3자 매각과 함께 지속적인 법정관리 가능성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동안 법원은 대한통운, 국제상사 등 이른바 알짜기업이나 자생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3자매각을 미루고 법정관리를 지속해왔다. 법원은 국제상사의 경우 이랜드가 최대 주주로 부각됐지만 관리인 등이 정관을 바꿔 이랜드의 경영권 행사를 막으면서 법정관리를 지속하고 있다. 이 경우 골드만삭스측의 압력이 변수다. 법정관리가 지속될 경우 채권자들은 이 기간에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며 이를 이용해 골드만삭스측이 불안을 느낀 일부 투신자들을 상대로 채권매집에 나서 출자전환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로 관계자는 “법원이 자신들의 경영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알짜기업들에 대한 3자매각을 미룬 경우는 부지기수다”며 “과거의 사례에 미뤄 진로에 대해서도 이같은 기준을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롯데·두산 움직임 주목=당초 골드만삭스측이 주장한 3자매각 가능성도 있다. 소주사업에 진출하려다 손을 뗀 롯데, 수도권 시장에서 진로의 영원한 라이벌 두산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이슬 소주만으로 수도권과 전국에서 각각 올들어 3월까지 91.9%, 54.1%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알짜기업 진로가 탐나지 않을 수 없다.

두 기업은 일단 외형상으로는 인수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회사와 노동조합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은 ‘인수에 참여할 자금여유가 없다’, 롯데는 ‘소주시장에 진출하지 않는다’고만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인수를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인수작업에 착수했다는 설이 무성하다.

술에 대한 이들 기업의 애착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두산은 최근 ‘산’의 고전으로 수도권 시장에서 맥을 못추고 있어 술도가 명성 재현을 위해서는 진로 인수가 필수적인 요소다. 위스키 시장에 진출한 롯데는 진로의 쿠어스 맥주 매각 때 입찰에 참여하려다 막판에 포기한 이후 지난 2001년 소주 시제품을 내놓는 등 종합주류회사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다.

롯데와 두산중 한 업체에 매각이 결정된다해도 진로노동조합과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우선 두산은 수도권 시장을 놓고 그동안 끊임없이 경쟁을 해 온 회사로 양사 직원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게 패어있다. 올해 들어서는 참이슬의 가격인상 폭을 두산측이 먼저 흘리는 바람에 진로의 가격인상에 차질이 생겼다며 두 회사 직원들이 갈등을 빚기도 했다. 특히 두산의 진로 인수는 진로의 수도권, 강원도 조직의 정리해고를 예고하는 것이어서 진로노동조합의 반대공세가 예상된다.

롯데는 그룹의 담당변리사가 골드만삭스측 변호인과 사전 접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감정이 상해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진로 직원 사이에는 법정관리결정이 골드만삭스와 롯데그룹의 작품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진로발렌타인스 구원투수 기대=이런 가운데 직원들은 3자매각이 강행될 경우 비록 외국기업이지만 진로측이 30%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진로발렌타인스가 ‘구원투수’로 나서줄 것을 내심 바라고 있다.
진로발렌타인스에 근무하는 직원 대부분이 진로 출신인데다 발렌타인스의 경영스타일이 현지경영을 존중해주는 성향때문이다. 실제로 진로발렌타인스의 영국법인 얼라이드도맥은 지난해 진로측과 매각협상을 벌였으나 막판단계에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진로발렌타인스 관계자는 “진로 인수에 대해 검토해본 적이 없다”면서 “진로 직원들 사이에 진로발렌타인스가 구원투수가 돼 달라는 의견이 팽배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현재로는 자금력이 없는 상태다”고 말했다.

/ njsub@fnnews.com 노종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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