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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출자총액제한’ 강화는 신중히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도입한 출자 총액 제한제도의 효과가 별로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03년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주식 소유현황’에 따르면 12개 민간기업집단(재벌)이 보유한 지분 가운데 이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 출자 금액의 비중이 2002년보다 9.4%포인트 늘어난 50.8%나 된다.

출자총액제한제도란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회사 자금으로 다른 기업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총액을 순자산의 25%로 제한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업 민영화 투자를 비롯하여 사회간접자본(SOC) 법인 출자, 동종·밀접한 관련 출자, 외국인 투자 기업 출자, 유상증자, 부실기업주식 인수 등은 이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 제도를 둘러싸고 재벌은 철폐 또는 완화를, 공정위와 시민단체는 강화를 주장함으로써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이번에 재벌의 보유지분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남으로써 공정위와 시민단체의 규제강화론이 보다 힘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기업을 포함한 17개 기업집단의 출자총액이 작년 규제대상 19개 기업집단의 출자총액보다 6.8% 줄어든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지주회사로 전환한 LG와 채권단 관리를 받게 된 SK글로벌의 출자분을 제외한다면 오히려 2.9%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출자규모가 줄어든 데는 변함이 없다.

출자총액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대상 재벌들이 그만큼 노력을 했다는, 또는 제도 자체의 효율성이 나타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도 이 제도가 예외로 인정한 부문에서의 출자가 늘어났다는 점을 문제삼아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선다면 당초 목적과는 또 다른 형태의 규제가 될 우려가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닌, 한국적인 특수 제도다.
여러 예외규정을 설정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업활동 장애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인데도 이를 ‘예외규정의 악용’으로 몰고가는 데는 문제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방임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득 2만달러 시대’를 내걸고 있는 지금, 또 경기둔화와 투자감소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보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