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에서] IT업계 ‘소수의 성공’

임정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7.11 09:47

수정 2014.11.07 15:56


“올 하반기엔 휴대폰이 대박을 터뜨릴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국내 굴지의 휴대폰 제조업체 임원이 기자에게 귀띔한 말이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휴대폰, 반도체, 컴퓨터 등 정보기술(IT) 부문 수출실적이 큰 폭으로 증가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주식시장도 IT업종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연일 거금을 쏟아부으며 IT주 사들이기에 정신이 없고 국내투자자들도 IT종목들을 새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미 NHN, 옥션과 같은 인터넷업체들은 실적이 급호전되면서 올들어 주가가 3∼5배 정도 폭등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이런 실적호전과 주가상승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인 현상이란 점이다. IT중심지로서의 명성이 바래 가던 실리콘밸리도 활기를 되찾고 있고 축 늘어져 있던 기술자들의 어깨에도 신바람이 일고 있다는 소식이다.

과연 IT산업은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는 것인가. 최근 미국에서 일고 있는 ‘IT의 성장성’ 논쟁은 이 점에 관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하버드대의 니콜라스 G 카르 교수는 ‘하바드 비즈니스 리뷰’지 기고문에서, “기업들이 경쟁우위를 찾기 위해 IT투자에 거금을 들이지만 돌아오는 수익은 거의 없고 과도한 투자에 따른 부작용만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IT투자는 효과보다 그에 따른 비용과 위험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일갈했다. 한마디로 적극적인 IT투자를 할 만한 메리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코노미스트지도 ‘잃어버린 낙원(Paradise Lost)’이란 IT조사보고서에서 ‘IT도 다른 인프라 기술들처럼 일용품에 불과하다’고 단언, 카르 교수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좋은 기술이라 하더라도 소비자입장에서 가치창조를 하지 못한다면 기술 그 자체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IT환상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기에는 충분하다.

사실 요즘 IT업계만큼 생존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업종도 드물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돼 온 통신서비스업체들은 시장이 포화단계에 들어서면서 비상이 걸렸다. PC업계는 PC의 고성능화에 따라 교체주기가 사라지면서 출혈경쟁에 들어간지 오래다.

그렇다면 IT의 성장성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인가.

이 점에 대해 실리콘밸리의 투자펀드 ‘실버레이크파트너스’의 창립자 로거 닉네미는 한 방도를 제시해 주고 있다. 그는 ‘IT가 국내총생산(GDP)의 2∼3배씩 성장하던 시절은 끝났다’고 단언하고, 시장에서 승리한 기업과 새로이 등장하는 틈새시장을 차지하는 기업에 한정해 투자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일부 인터넷업체들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들의 수익모델을 뒤따라가는 업체들까지 덩달아 좋아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경쟁업체에 밀려 악전고투하고 있는 IT업체들이 갑자기 좋아질 리도 만무하다.
IT가 높은 성장성을 가졌더라도 성공은 소수의 것이기 때문이다.

/ lim648@fnnews.com 임정효 정보과학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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