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日 핵폐기장 로카쇼무라를 가다] 산골마을 핵시설 유치로 ‘富村’ 변모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7.14 09:48

수정 2014.11.07 15:52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유치를 두고 정부와 사업자,환경단체 및 지역주민간의 공방이 불을 뿜고 있다.환경단체는 핵폐기물은 안전성 확보가 최우선이어야 하는데정부는 돈으로 지역주민을 매수하고 있다며 산업자원부를 몰아세우고 있는 반면 산자부, 한국수력원자력은 부지 지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부안군 등 시설을 유치할 속내를 갖고 있는 지자체들은 향후 20년간 2조원의 재정지원금이 고스란히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주민설득에 나서고 있어 정부,환경단체,지자체 등 3자는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이런 점에서 일본 로카쇼무라의 핵폐기물 처분장은 한국에는 반면교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편집자주>

【로카쇼무라(일본)=최진숙기자】일본 혼슈의 북쪽 끝 아오모리현은 울창한 삼림이 들어차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임업지대로 꼽힌다.

아오모리현의 동남쪽으로는 미 공군기지가 있는 미사와시가 있고 여기서 북쪽으로 30㎞를 더 가면 인구 1만2000명의 로카쇼무라가 나온다.
일본 수도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700여㎞ 떨어진 곳이다. 지난 2일 방문한 로카쇼무라는 더할 나위 없이 한가롭고 평온한 시골마을처럼 보였다.

로카쇼무라는 여섯개(六·로쿠)의 작은 마을(村·무라)로 이뤄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곳은 일본내 53개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온갖 핵폐기물이 집결하는 곳이다. 또 핵연료인 우라늄 농축공장을 비롯, 2년뒤 가동할 ‘사용후 연료 재처리공장’이 들어서 있어 문자 그대로 일본의 핵연료 산업 핵심기지다.

핵시설 부지는 약 220만평(740만㎡)으로 사방은 산이 둘러싸고 있다. 시설 단지의 맨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폐기물처리장은 지난 92년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폐기물은 방사능 안전검사가 끝나면 200ℓ들이 드럼통에 넣어 깊이 8t인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6t 높이로 차곡차곡 쌓는 방식으로 저장한다. 그위에다 다시 12m 높이까지 도자기원료로 쓰이는 ‘벤토나이트’ 혼합토와 흙을 덮어 다지면 매립은 끝난다.

지금까지 1단계로 20만드럼을 처분했으며, 현재 2단계로 다시 20만드럼을 처리중이다. 최대 300만드럼까지 처분할 수 있어 이 시설은 일본에서 발생하는 100년치 핵폐기물을 소화할 수 있다고 시설 관계자들은 전했다.

핵연 시설 운영자인 일본원연 관계자는 “처리장 직원들과 주민들이 비상사태에 대비한 훈련을 수시로 하고 있다”면서 “아직 위험을 느껴 이주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고 밝혔다. 시설 안전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 “3개월에 한차례씩 로카쇼무라와 주변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수산물의 방사능 수치를 검사하고 그 결과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모든 것은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눈에는 불안감이 서려있다. 핵시설기지에서 차량으로 10분정도 떨어진 시골마을 오부치에서 만난 사토 젠에몬(75)도 불안한 속마음을 털어놓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부치 토박이인 그는 “원전 시설이 들어선 이후 인구도 늘고, 마을도 커진 게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피해가 없다는 것 뿐이지 솔직히 사고가 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떨쳐버릴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저멀리 핵연 재처리공장에서 비쳐오는 불빛이 곱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리라.

겐지 후루카와 로카쇼 촌장도 핵시설이 로카쇼의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는 데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전국에서 하위권이었던 주민소득은 핵시설이 들어선 이후 일본 전체 평균보다 높아졌고 인구가 덩달아 불어났다. 일본 농어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인구감소는 로카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겐지 촌장은 “이제 로카쇼무라에서는 농한기에 취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는 현상을 보기 어렵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로카쇼의 성장과 평온함과는 달리 핵시설을 둘러싼 안전성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시설 입지가 확정된 게 84년이었는 데도 8년이 지난 92년에야 시설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발때문이었다.

그간 다소 잠잠해지는 듯했던 반발 움직임은 지난 해 터진 ‘도쿄스캔들’로 로카쇼 핵폐기장 시설 폐기와 핵재처리공장 백지화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쿄 스캔들은 도쿄전력이 지난 17년동안 원자력시설에서 생긴 각종 사고를 감춰왔다고 한 전기회사 직원이 폭로한 것.

이 여파로 도쿄전력은 원전 17기중 12기를 가동 중단했고,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섞은 연료인 목스를 사용하는 차세대 원전 사업인 ‘플루서멀’ 계획도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불신감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핵연사이클 저지 1만인 원고 소송단’ 야마다 기요히코 사무국장은 “사용후 핵연료를 냉각하는 로카쇼의 저장조 3곳이 누설된 것으로 민간단체가 확인해 당국에 조사를 요구했으나 묵살됐다”고 말했다. 당국이 주민 불신감을 자초했다고 비판받는 대목이다.


그는 특히 지역언론사가 아오모리현 주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로카쇼 핵폐기장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87.5%가 불안하다고 답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핵단체들은 “사고가 나면 시설 바로 옆의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으로 대피하라고 하지만, 누가 사고현장 쪽으로 가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야마다 사무국장은 “재처리공장 건설에 2조1400억엔, 향후 40년간 운영하는 데 15조9000억엔이나 각각 든다”면서 “이 시설은 결국 9조엔의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 자민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 jins@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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