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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의 고향, 파르마·베로다] 흙한줌에도 베르디의 숨결이

주장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7.24 09:50

수정 2014.11.07 15:33


산과 계곡 그 사이 초원의 바다에는 그리움이 솟아오르듯 안개가 피어 오른다. 이 빛들도 이제 베르디처럼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가리라. 파르마는 이탈리아 북부 의고(擬古)한 도시다. 축구광이라면 베르디를 기려 한때 베르디축구클럽으로 불리기도 했던 AC 파르마가 떠오를만도 하다.

이곳 여름은 매우 들떠있다. 파르마왕립극장을 중심으로 오페라 ‘아이다’ ‘나부코’ ‘ 라트라비아타’ 등으로 유명한 주세페 베르디를 기리는 페스티벌이 한창이어서 그렇다. 사람들은 밤이면 두오모대성당이 우뚝한 이곳 광장에 모여 ‘청아한 아이다’나 ‘개선행진곡’을 부른다.


자작나무 잎새와 제비꽃들이 흐드러지는 파르마는 과거를 되살리는 고대사의 오랜 흔적들이 한지에 스며든 먹물처럼 배어있다.

파르마 시내에서 북쪽으로 30km쯤 총총 걸음을 하다보면 게으름을 피우며 늘어서 있는 농가들이 눈에 띈다.포도와 햇살의 고향 부세토다. 베르디는 이곳에서 담배 한 대 피울쯤 상거한 레 론콜레에서 태어났다. 베르디의 생가 빌라 베르디(Villa Verdi)는 ‘리골레토’ ‘오셀로’ 등을 품은 명작의 산실이기도 하다. 손바닥 만한 땅을 가진 지주이며 여인숙을 경영하던 아버지는 떠돌이 악사들과 자주 어울렸다. 베르디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거리의 악사들은 그의 집에 몰려와 세레나데를 연주해 득남을 축하해 주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80년을 살았으니 88세에 이른 삶의 기간 동안 베르디가 얼마나 이곳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이렇게 그의 사랑을 표현했다.

“나는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늘 론 콜레에 남아 있을 것이다.”

베르디가 영면한지 100년이 지난 2000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체르벨라티는 베르디가 태어난 집을 리모델링했다.집 안에 들어서면 성큼 키 큰 나무사이로 중세풍이 살아나는 대정원과 조각가 지 칸투가 만든 베르디의 청동흉부상이 눈길을 잡는다. 정적을 그대로 담은 듯 고즈녁한 이 집은 그러니까 현세와 내세를 이끌어가는 부표다. 베르디의 침실,그가 쓴 악보, 두 번째 부인의 흉상, 침대,습기가 들어 이젠 눅눅해진 낡은 사진첩, 피아노, 손때 묻은 우산, 장갑 등도 회한을 자아낸다. 나그네는 이 유품에서 가족부양이라는 의무를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음악을 통해 마음껏 부르짖었던 한 인간의 소리를 듣게 된다. 나를 죽여야만 나를 살릴 수 있는 삶은 바로 아이디의 모티브요 나부코에 채색된 물감인 것이다.

의식의 배면에 숨겨진 베르디의 욕망은 그의 정원에 펼쳐진 태고의 그림으로 이어진다. 크기를 목측할 수 없이 넓은 정원 호수에는 인간과 동물의 영혼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 하며 짤록하게 핀 선홍색 아이리스는 베르디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현장을 통찰하려는 욕망을 지닌 순수한 여행가라면 어디든 흔하게 있는 베르디의 상품들에 조금은 눈쌀을 찌푸릴 만한데 이곳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면적 욕망과 현실의 괴리는 늘 있는 것이어서 그를 배척할 자신이 없으면 베르디의 음악이나 진물이 나도록 듣고 와도 좋은 곳이다.

부세토는 베르디가 19세에 밀라노로 진출 할 때까지, 음악 수업을 했고 그후에도 자주 머물렀던 마음의 고향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베르디란 이름은 ‘꼬레아의 김씨’처럼 지천이다.

시청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앞은 베르디 광장, 광장 건너편의 건물은 그를 밀라노로 등떠민 후원자이며 장인인 바레치의 집이다.

부세토의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면 빌라 팔라비치노 박물관이 있고 이 안에 베르디 기념실이 있는데 베르디와 마르게리타가 연탄하던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다. 빌라노바에는 베르디 기념병원이 있으며 시장 바로 옆에는 극장이 있는데, 개관식에는 베르디의 리골레토가 공연되었다. 이 베르디 극장에서 매년 6월 ‘베르디국제성악콩쿨’이 열린다. 1960년부터 시작된 세계적 권위의 콩쿨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베르디를 끝까지 추적해 곶감이라도 꿰 볼 자신이 있는 여행객이라면 파르마에서 버스로 3시간 걸리는 베로나로 발길을 돌려 보는 것도 센스있는 투어의 하나다. 기원후 1세기 초에 만들어진 아레나원형경기장(Arena di Verona)은 원래 검투사들이 사자등 맹수와 싸우던 곳으로 타원형의 긴 쪽 길이가 140여m로 2만 관객을 수용할수 있다. 채찍과 한숨으로 건설된지 200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비명소리가 쟁쟁하다.

아레나는 야외 오페라 축제를 매년 여름 열고 있다. 1913년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페스티벌엔 전세계 관광객들이 운집하는데 ‘아이다’ ‘투란도트’ ‘카르멘’ 등이 번갈아 공연된다

이곳에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감독한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지휘자 다니엘 오렌,피오렌차 체돌린스, 살바토레 리치트라,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마리아 칼라스. 호세 카레라스 등 쟁쟁한 성악가들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한국관객들은 지겨울 수가 있다. 책보면 졸음 온다 하지말고 공연작품의 내용을 미리 알아두자. 공연시작 전에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가로 나가 유럽의 정취를 맛보는 기분도 괜찮다. 안개에 섞여 비내리는 거리에는 아이다의 불빛을 받고 날아오르는 새들의 노랫소리로 소란스럽다. 낯설음에 어리둥절하던 여행객들은 이곳이 로마시대 전사들이 성당의 종소리를 따라 힘차게 약동하던 힘의 근원지임을 깨닫게 되는 찰나다.

사랑에 눅눅해진 연인들이라면 줄리엣 가슴을 한 번 만져 보고 오는 응큼한 행악도 괜찮다.
그녀 동상의 가슴을 한 번 만지면 ‘애정전선 이상 없다’는 것 아닌가? 이곳엔 로미오가 줄리엣을 만나기 위해 월담하여 프렌치 키스를 나누던 발코니와 줄리엣의 동상,생가,무덤도 마련돼 있다. 물론 가짜지만 진짜처럼 만든 이탈리아인의 상술에 코가 석 자나 나왔다.
6월에는 ‘줄리엣 선발대회’를 여니 사랑에 멍든 여자는 참가하여 사무친 원한을 풀어 볼 일이다.

/ jch@fnnews.com 주장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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