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형칼럼] 갈길 먼 국내은행 경쟁력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3.07.29 09:52

수정 2014.11.07 15:25


15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나라 금융기관, 그 중에서도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은행들은 그동안 경쟁력이 어느 정도 높아졌을까. 외환위기 이후 가장 심한 구조조정의 회오리바람을 탄 것이 은행들이다. 많은 은행이 인수합병(M&A)을 통해 시장에서 퇴출되고 많은 은행 직원이 직장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은행들이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우리 현실이다. 우선 우리나라 은행은 규모면에서 세계은행들과 경쟁하기에는 아직도 왜소하다. 은행의 대형화 추세에 맞추어 우리나라도 합병을 통한 대형화 작업을 추진하였지만 세계적인 은행들과 비교할 때 그 규모가 지나치게 작다.

기본자산 기준으로 세계 100대 은행에 우리나라는 국민은행 하나만 60위를 차지하고 있다.
1000대 은행에도 겨우 13개가 포함돼 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은행규모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액(GDP)이 세계에서 15위 수준에 있고 무역규모는 세계에서 12위 안에 드는 점을 고려할 때 작은 규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규모나 무역규모에 비해 은행의 규모가 작으면 그만큼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 기업대출 하나가 부실화돼도 은행의 안정성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경제규모에 비해 은행이 왜소

둘째, 우리나라 은행은 아직도 부실자산에 허덕이고 있으며 수익성 측면에서도 선진국 은행들과 경쟁하기에는 허약하다.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기업부실은 많이 해소됐다. 그러나 최근 SK글로벌의 부실로 은행들이 또다시 고전하고 있다. 여기에다 무분별한 가계대출의 확충으로 빚어진 가계부실과 카드채 부실로 은행들의 경영상태가 불안하며 대외신인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은행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총자산 이익률(ROA)의 국내 10대 은행 평균은 0.75%밖에 안된다. 우량은행이 되기 위해서는 ROA가 1%는 넘어야 한다. 미국은행은 ROA가 1.7%로 우리나라보다 2배 이상 높다.

셋째, 우리나라 은행의 경쟁력 취약요인으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전문인력의 부족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은행은 위험관리를 통해 시장경제를 이끌어 가는 주도적 역할을 하는 곳이다. 자금 대출자로서 기업의 투자행위를 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부실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도 은행의 역할이다.

시장경제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기업보다도 경제와 산업에 대한 전문인력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은행들은 기업을 리드하기보다 기업에 끌려 다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경제분석이나 산업전망, 위험관리 능력에 있어서 대기업보다도 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업과 산업 그리고 시장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전문인력의 양성과 채용에 인색해서는 세계적인 은행들과 경쟁하기 어렵다.

넷째, 폐쇄적인 은행문화도 우리나라 은행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세계적으로 은행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각국의 은행들은 M&A 전략을 통해 대형화와 효율성 제고로 경쟁력을 높여왔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위험이 닥치기 전에 자발적으로 적극 M&A를 추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M&A가 잘 이뤄지지 못했다. 경쟁력을 위해서는 남과도 한 배를 타는 열린 마음과 전략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데 외부 금융환경의 변화에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탓이다. 여기에는 은행노조의 책임도 크다. 합병 후 중복점포와 인력의 정리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합병에 반대하는 것이 노조들의 행태였다.

폐쇄적 은행문화도 걸림돌

다섯째,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국민들의 의식구조도 은행경쟁력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 국민들과 언론은 은행의 예대마진이 크거나 은행이 제공하는 각종 금융서비스에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면 은행이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최근 선진국 은행들은 공공성보다 기업성을 더욱 중요시 하고 있다. 은행이 적절한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예대마진도 충분하고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상 수수료도 충분히 받는 것이 선진국 은행들의 행태다.

은행의 수익성이 나빠지면 은행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대외신인도도 떨어져 우리나라 금융산업 자체가 허약해진다. 금융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은행이 수익을 높이려는 기업마인드를 갖는 것을 탓해서는 안된다.


은행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과도 동침하고 경쟁자와도 M&A를 통해 자신의 기반을 확고하게 해야 한다. 아직도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 은행들이 경제규모에 걸맞게 대형화되기 위해서는 또 한번의 자율적인 은행간 합병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은행문화를 시급히 타파해야 한다.

/유석형 논설실장·경제학박사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