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컬럼]기업이 난세를 사는 법/방원석 논설위원

방원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11.02 12:04

수정 2014.11.07 12:29


이제 불황은 일상사가 됐다. ‘호황은 짧고 불황은 길다’는 게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우리는 불황을 당연한 세상의 이치로 받아들여야 한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불황에 강한 체질을 갖고 사는 게 중요한 것이다. 요즘 장사꾼들은 서민경제가 IMF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부동산중개소, 식당, 영업용택시 할것 없이 서민경제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는 것이다.
원래 장사꾼들의 엄살이라는 게 체질적인 것이기는 하나 요즘 분위기로 볼 때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다. 급기야 식당주인들이 장사가 안되자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불길한 징조의 전주곡 같다. 명예퇴직, 정년퇴직 및 실직자들이 손쉽게 손댈 수 있는 마지막 생계수단이 음식장사인데, 불황에 쌈짓돈까지 다 날리게 됐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음식장사로 성공할 확률이 5%도 안 된다는 것은 이 바닥 사람들의 정서다. 우리나라의 자영업비율(30%)은 선진국(5∼7%)에 비해 엄청 높다. 실직하거나 퇴직하면 무턱대고 장사에 뛰어드는 식이다. 호황의 훈풍이 불어도 어려울 판에 불황의 삭풍이 거세니 성공할 리 없다. 우리사회는 쪽박차기 딱 알맞은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서민경제의 위기는 나라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국가정체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이기에 결코 가벼이 볼 게 아니다. 그래서 불황탈출에 국가역량을 쏟아붓기에도 바쁜 판인데 우리는 허구한 날 집안싸움이니 기업이나 장사꾼들이 불황을 안 타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지금 거리에 100만명이 넘는 실업자와 노숙자가 넘쳐나고 부도중소기업이 속출해도 우리사회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것 같다. 지도층과 부유층들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실감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경제위기가 닥치면 고통받는 계층의 범위가 훨신 넓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텐데도 말이다. 빈곤층이 넓어지면 이판사판의 역풍이 뜻하지 않은 쪽으로 불어닥칠 수도 있다.

‘못살겠다’는 서민경제와 달리 대기업들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어떤 기업은 돈이 넘쳐 주체를 못할 지경이다. 이런데도 기업들이 위기감으로 온갖 비용을 줄이고 통제하니 서민경제가 더욱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계속되는 불확실성을 위기감의 이유로 든다. 이라크 전쟁, 북한핵 문제, 카드채 부실, 대통령 탄핵소추, 신행정수도건설 문제가 끊임없이 기업들을 괴롭혔고 지금도 온갖 정쟁에 바람잘 날 없다. 따라서 국내기업들은 최근 몇년간 이러한 불확실성에서 한치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런 모든 변수는 우리경제와 기업 모두에 두말할 것 없이 마이너스다. 하지만 지금의 몇몇 우량 장수기업들은 전쟁통에도 살아남았다. 요즘 기업들이 불확실하다고 엄살을 피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기업들이 경계하고 움츠리는 이유도 없지 않다. 사회분위기와 일부 정책의 좌파적 가치 득세 때문일 것이다. 이는 산업화 이후 우리가 처음 맞는 생경함인데, 그것이 두려움으로 변질되고 위기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 위기의 서민경제를 살리고 불황파고를 넘기 위해 무엇보다 대기업의 역할론이 강조되고 있다. 믿을 데라고는 기업밖에 없는 까닭이다. 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임직원 급여에서 1%를 떼내고 연탄을 배달하면서 불우이웃을 돕고 있지만 더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상생과 나눔의 경영확산이 그것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좇아서는 국민기업, 글로벌기업이 될 수 없다. 최근 대기업과 서민경제가 상생하는 모범사례를 소개할까 한다. 신세계백화점 서울 강남점이 장사난에 허덕이는 주변 음식점들과 계약을 맺고 백화점 단골고객에게 음식값을 20% 할인해주는 행사를 하고 있는데 이 행사 후 음식점 매출이 20% 이상 늘었다고 한다. 공신력 있는 대기업이 음식개런티를 해주니 고객들이 믿고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생경영의 전형이다. 기업이 불황과 격동 속에서 국민 곁에 있으려면 사회적 공헌활동은 필수코스다. 미국처럼 오너의 기부문화로 이어진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국민과 더불어 사는 일, 이제는 기업경영의 핵심이다.
기업들은 당장 사회공헌활동에 나서라. 고용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어떤 난세에도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그 비결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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