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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 듣는다]미국 대선 그 이후/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대통령 선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비평가들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공화당이 의회에서 의석 수를 추가한 것과 함께 이번 선거는 부시의 정책을 승인한 것으로 봐야 하는가. 미국 유권자들은 오른쪽으로 돌아섰는가. 이제 미국인들은 ‘가치’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가.

경제학에서 가격과 마찬가지로 선거에서 던져진 단 한 표에도 여러가지 정보가 담겨 있다. 그 한 표에는 모든 점을 감안할 때 어떤 시민이 과연 어느 후보를 더 선호하고 있는지가 요약돼 있다. 따라서 그 한 표가 미국에, 나아가 전세계에 진정으로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많은 설문조사를 거쳐야 한다.

이것만은 틀림없다. 즉 유권자들은 부시의 경제정책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미국 가정은 생활 형편이 4년 전보다 못하다는 걸 알고 있다. 이들은 고소득 미국인들을 위한 세금 감면이 부시 행정부가 예견했던 것과 같은 이득을 자기들에게 가져다주었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눈치다.

부시 대통령은 4년 전 총투표 수에서 뒤지고도 자신의 의제를 밀어붙이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제 부시는 확실한 승인을 획득했다고 여겨 감세를 영구화하고 사회보장제도를 일부 민영화하는 정책 등을 더 과감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책이 채택되면 엉망진창인 미국 재정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다른 나라에 이런 것들은 미국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미국 재정적자가 치솟으면 국제금융의 안정성을 다소 해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미국이 갈수록 돈을 더 많이 빌리면 실질금리가 오를 수도 있다. 미국의 재정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유럽과 아시아는 수출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재정적자가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나타나면 전세계 성장도 주춤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진짜로 우려하는 것은 미국의 일방주의다. 세계는 서로 연결돼 있어 협력과 집단행동을 필요로 한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에 집단결정을 명령할 수 없다는 세력에서 지도력을 발휘해 왔다. 불행하게도 지난 4년 동안 미국 대통령은 이같은 지도력을 뒷받침할 신뢰를 잃었다. 설사 부시에게 던져진 5900만 표가 그의 이라크 정책을 분명히 승인한 것일지라도 이것으로는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미국인 대부분이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것만큼 일방주의도 거부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 많은 미국인은 부시 행정부가 이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가기를 원했다. 이들은 지금 미국 단독으로 중동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이라크가 스스로 복구비용 중 상당액을 댄다해도 그러려면 부채 탕감이 꼭 필요한 상황이며 이 역시 국제적인 협조가 있어야 한다.

부시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이라크에서 자행된 미국인들의 고문, 또는 대량살상무기와 알 카에다와의 연계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 대해 다른 나라 사람들만큼 격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역시 미국 혼자서 국제 평화라는 짐을 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라 해서 자동으로 국제사회에서 지도력과 협력을 얻어낼 수 없다는 점을 천천히 깨닫고 있다.

일부에서는 부시가 이번 선거에서 과반수를 얻은 데 힘입어 또 다른 모험에 나서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 스스로 말한 것처럼 “나는 선거를 통해 자본을 확보했고…그리고 지금 그 자본을 쓰려고 한다.” 이라크에서의 모험이 좀 더 성공적이었다면 이런 우려가 정당화됐을 것이다. 이란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선제공격 논리는 심한 상처를 받았고 의회와 미국인들이 뼈아픈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나는 버리지 않고 있다. 이라크에 조만간 평화가 찾아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벌여놓은 일도 채 수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새로운 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이 이라크 모험을 잘못 저지르고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비용을 물론 다른 나라들이 계속 지불해야 한다. 중동지역의 불안정 탓에 원유 공급이 제한돼 각국의 생산 증가를 억누를 것이다. 올 연말에 이어 내년까지 세계 경제 성장세가 고유가 때문에 움츠러들 것이다. 단기적으로 유일한 대응 방안은 에너지 절약이다. 우방들은 미국이 에너지 절약에 나서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최근 보도된 것처럼 북극 빙산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어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미국이 에너지 절약에 나서야 할 다른 이유다.)

대통령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대통령이라도 일을 하는데 제약을 받는다. 기쁜 소식은 부시와 현 미국 정부가 앞으로 4년 동안 맞닥뜨릴 제약 덕분에 이들이 일으킬 피해가 거의 분명히 줄 것이란 점이다. 부시의 갖가지 수사와 태도, 인권이나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의지 부족 등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할 수는 있겠지만-당연히 그럴 것이다-밖으로 짖어대는 것보다는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게 훨씬 적을 것이다.

미국이 일방주의 노선을 계속 유지하는 동안 다른 국가들이 어떤 노선을 택하느냐가 관건이다. 일부에서는 미국 헌법이 외교정책에 있어 대통령을 거의 제약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헌법 제정 당시에는 강대국 영국과 프랑스가 필수불가결한 견제와 균형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다. 따라서 각국이 들고 일어나 의견을 밝히고 압력을 받더라도 그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것이 한층 중요하다.

이런 것이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계는 우정과 존경에 바탕을 둔다. 논리를 갖춘 일관된 태도를 보이면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오늘날 많은 미국인은, 특히 젊은이들은 미국 정부의 왜곡된 말을 되풀이하는 지도자들이 있는 나라보다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주장은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나라들을 훨씬 더 존중한다.

오늘날 현실정치가 득세하고 있다는 건 불행한 일인지 모르나,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 역시 같은 게임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다자주의와 국제질서를 주창하는 것은 단지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에 그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동맹국들, 궁극적으로는 미국 자신에게도 이익이다.

■영문으로 보는 키워드

Today, with the US as the only superpower, it is even more important for countries to stand up and express their views-and to stick by them even when pressured. Some worry that this will worsen relations with the US. But long-term relationships are based on friendship and respect; coherent, well-argued positions will earn that respect.

지금은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다. 따라서 각국이 들고 일어나 의견을 밝히고 압력을 받더라도 그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것이 한층 중요하다.
이런 것이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계는 우정과 존경에 바탕을 둔다. 논리를 갖춘 일관된 태도를 보이면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정리= dympna@fnnews.com 송경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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