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외국투자가 입김 너무세다/이상묵 삼성금융硏 정책연구실장·경제학 박사

박신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11.22 12:08

수정 2014.11.07 11:57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은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경영되어야 한다는 주주자본주의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경영자들의 입에서 그러한 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고 기업들마다 투자자홍보(IR, Investor Relationship)를 담당하는 임원이 지정되어 정기적으로 해외에 나가 기업설명회를 갖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있는 데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최근의 경향도 예외가 아닌 듯싶다. 본래 주주자본주의는 자본시장이 발달된 미국에서 외부주주 내지 소액주주의 위치를 보호하기 위한 개념으로 개발되었다.

외부에서 자금을 대는 외부주주 또는 소액주주야말로 기업의 위험에 대한 최종 책임자이므로 기업은 외부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영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주식투자자의 집단인 월가와 그 주변에서 활동하는 금융학자들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전파되고 있다.


기업과 관련된 종업원, 채권자, 고객 등 다른 이해관계자는 기업에 대해 선순위 확정 채권을 가지고 있어 위험을 부담하지 않는 반면에 주주 내지 외부주주는 이들에 대한 확정채무를 모두 이행하고 난 후에도 남는 이익이 있는 경우에만 배당이라는 보상을 받으므로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다른 이해관계자에 대한 의무는 자연스럽게 이행된다는 것이 주주자본주의의 논거이다.

그러나 현실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회사채의 유통수익률은 발행한 회사의 신용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는 확정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채권자도 위험을 부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업원의 경우에도 나름대로 위험을 부담한다.

어떤 회사에 취직해서 10년 이상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나면 다른 회사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다. 특정한 회사에서 배운 기술이나 경험이 다른 회사나 직종에서도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업원의 입장에서 특정한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은 나름대로 위험을 부담하는 행위이다.

주주가 부담하는 위험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회사가 잘 될 때 배당을 받은 주주가 그 회사가 부도가 났을 때 과거에 받은 배당을 모두 반환해서 채권자들에 대한 채무의 이행에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미국과 같은 선진국 시장에서 주식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위험프리미엄은 평균적으로 연 5% 내외에 불과하다.

주주자본주의의 이러한 논리적 결함으로 인해 주주자본주의의 산실인 미국에서도 정부는 정책결정시 월가의 주장을 선별해서 받아들인다. 외부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기업의 투자와 성장을 촉진함으로써 기업과 관련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공통된 이익에 봉사하는 범위 내에서만 월가의 주장을 정책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월가는 독약처방(Poison Pills)과 같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기업의 방어장치나 지배주주가 외부주주에 비해 10배, 100배의 의결권을 가지는 차등의결권 주식 제도를 금지해야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월가가 루빈과 같은 유명한 재무부장관을 배출하고 정계와 관계에 막강한 로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미국 정부가 월가의 이러한 요구를 묵살하는 것은 1980년대 미국에서 활발했던 적대적 M&A와 경영권 불안이 야기했던 국민경제적 폐해를 직접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대외신인도 제고라는 허상이 기업정책을 좌우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골드만삭스와 같은 외국인 투자가들은 스스로는 정관에서 주주의 주주총회 소집권한을 배제하고 독약처방의 근거를 두는가 하면 이사의 의무를 주주는 물론이고 파트너와 종업원의 이익 보호로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우리에게는 외부주주 중심의 기업지배구조정책을 요구하고 있고 그러한 요구가 여과 없이 정부의 정책으로 수용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기업들은 어렵게 번 돈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의 활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동원하기에 앞서 외부주주의 이익 보호에 치우친 기업정책으로 인해 기업의 투자와 성장이 저해되는 문제점부터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

/sm7060.lee@sam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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