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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국채 투자 딜레마…한은,환율급락으로 유지·축소 고민

유상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11.30 12:09

수정 2014.11.07 11:47



‘줄이기도 유지하기도 마뜩지 않은 상황.’

최근 미 달러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달러화 표시 자산 비중을 줄이는 문제로 한국은행이 고민에 빠졌다.

달러 비중을 줄이자니 환율이 걱정되고 현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자니 운용 손실이 만만치 않다.

최근 들어 달러 가치가 급락하면서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들이 앞다퉈 달러화 자산 비중을 줄일 태세여서 한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달러화 약세 정책에 대해 미국 국채를 처분하는 등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지난달 30일 지적했다.

실제 중국은 달러 약세에 대비해 미 국채 투자비중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미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 중앙은행의 미 국채 투자잔액은 9월말 현재 1744억달러로 전달(1723억달러) 대비 소폭 증가했으나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미 국채비중은 33.9%(9월말)로 지난해 6월말(42.5%)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대우증권 이효근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의 경우 미 국채에 대한 투자잔액이 늘어난 반면 비중이 줄어든 것은 상대적으로 유로화나 엔화 등 비달러화 자산의 비중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위안화 평가절상에 대비하는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또 일본과 영국도 그동안 미 국채 투자를 불려왔으나 지난 9월부터 투자잔액을 관리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미 국채 투자잔액이 지난해말 5518억달러, 올해 6월말 6893억달러, 8월말 7219억달러 등으로 늘어나다 9월말엔 7204억달러로 증가세가 한풀 꺾였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일본이 아직은 수출경쟁력을 지킬 목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 방어 차원에서 달러 자산을 보유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정책명제를 갖고 있지만 이를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외환보유액 중 달러화 자산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 국채 투자 잔액은 오히려 더 늘고있는 추세다.

대우증권은 미 재무부 통계를 인용, 지난 3·4분기 현재 우리나라의 미 국채 투자잔액은 666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분기(605억달러)에 비해 3개월새 60억달러가 증가한 규모다.

미 국채 투자잔액의 대부분은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 몫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운용 방침에 따른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또 전체 외환보유액 가운데 미 국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3·4분기 38.2%로 전분기(36.2%)에 비해 2%포인트 높아졌다. 미 국채 투자 비중은 지난해 6월 45.7%로 사상 최고치를 나타낸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지난 2월 35%까지 떨어졌으나 5월 이후 꾸준한 오름세에 있다.

문제는 현 시점이 달러화 가치가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 국채의 비중을 늘리는 것은 달러가치가 떨어지는 폭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달러화 자산 비중을 줄여 환 리크스에 적절히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미 재무부 통계수치는 추정치여서 실제 수치와는 다르다”면서 “지난 2001년부터 한국은행도 달러 자산에서 비달러 자산으로, 국채에서 비국채 자산으로의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꾸준히 추진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이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고 있지만 외환보유액 중 70%가량이 달러화 자산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정환율제를 시행 중인 중국과는 달리 달러화 자산을 섣불리 처분할 수도 없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특히 외환보유액은 국가의 최종 대외 지급준비금 성격이 강해 수익률만을 고려해 자산을 운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한은이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박사는 “아시아 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달러 자산 가치가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지속적으로 달러자산을 축소해왔지만 우리나라는 무작정 달러 자산을 내다팔 수 없는 처지”라며 “유로화 비중을 늘리는 등 포트폴리오 구성에 신경을 쓰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 ucool@fnnews.com 유상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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