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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금융허브다-오피니언 리더들의 여론]정책비전 높지만 여건은 걸음마 수준



참여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는 동북아 금융허브는 과연 실현 가능한가. 산업구조가 전통제조업에서 디지털·지식기반으로 급변하고 있는 지금, 금융산업을 통한 가치창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당위성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처럼 금융허브 구상은 20∼30년 후 우리는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하는 장기생존전략과 연관돼 있다. 금융허브 로드맵 발표 1주년을 맞아 정부의 정책을 중간점검하고 국내금융권의 준비상황과 해외 선진금융허브의 현장을 취재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지난해 12월 정부는 국정 핵심과제 중 하나인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가 금융허브를 들고 나온 데는 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에 대한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오랜 세월 가동돼 닳아빠진 성장엔진을 바꿔달지 않고서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던 때였다.

금융허브 추진은 그렇게 우리경제의 새 지평을 열어갈 기대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금융허브로 가는 길은 여전히 저 먼 곳에 있다.

15일 본지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이같은 실정은 뚜렷히 드러난다.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의 타당성에 대해 과반수(64%) 이상이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그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들은 30%에 그쳤다.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이 가까운 미래의 경제번영을 위해서는 필수지만 여건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현실적 괴리를 반영하고 있다.

◇절반의 성공(?)=그간 정부가 추진해온 금융허브 정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인색하다. 금융허브 관련 정책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 50명 중 3명(6%)에 불과할 정도다.

정책에 대한 구성원들간의 합의가 부족하고 무엇보다 구체적인 추진 전략이 서있질 않아 성과를 내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유인정책이 부족하고 국제적인 시각 접근이 미비해 금융허브가 구호성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동북아시대위원회를 중심으로 법·제도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아직 기획단계인데다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첫 해에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낸 점과 강력한 추진의지를 보여준 점은 그런대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 국내 금융시장이 미약하나마 금융허브의 요건을 갖추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는 최근 한국씨티은행 출범과 HSBC 등의 제일은행 인수 움직임 등이 금융허브 구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답변이 80%에 육박한 데서 잘 나타난다.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두고 볼 때 균형의 추가 ‘칭찬’보다는 ‘비판’쪽에 기울어져 있다. 정부가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시행 등 금융허브 구축을 위한 제도 및 법적 토대를 진행해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우려섞인 시선을 좀처럼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다.

◇무엇이 문제인가=금융허브 건설의 가장 큰 걸림돌로는 제약이 많은 법률 및 규제 시스템이 꼽혔다. 특히 현 금융감독체계가 외국인에게 비우호적(unfriendly)이어서 외국 자본이 발을 들여놓기 힘든 구조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영어구사 능력이 중국, 싱가포르 등 경쟁국들에 비해 상당수준 떨어지는 점과 구체적인 전략 부재도 금융허브의 길을 막는 장애물로 지적됐다. 정부가 의지만 앞섰지 법적 장치 등 제반여건을 마련하지 못해 상하이 등 경쟁국들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게리 딤스키 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최근 IMF 금융위기 이후 7년을 맞아 개최된 한 토론회에서 “한국은 홍콩, 싱가포르에 비해 인프라와 국제화 정도에서 뒤처져 있어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은 성공하기 힘들다”고 질타했다.

일본이나 중국에 견줘 국내 시장 규모가 작은 데다 상하이나 대만보다 허브 경쟁에 늦게 뛰어든 것도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멀지만 가야할 길=정보기술(IT) 산업을 뺀 대부분의 분야에서 일본과 중국에 밀리는 만큼 금융허브 구축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문제다. 다행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경험한 덕에 금융부문에 있어서는 우리가 중국과 일본보다는 유리한 입장이다.

문제는 현 상황을 볼 때 (금융허브)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하지만 금융허브 환경에 맞게 제도를 정비하고 추진 플랜을 꼼꼼히 짠다면 목표에 성큼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무엇보다 법률 및 규제시스템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글로벌시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국내 금융기관들이 경쟁력 확보에 힘써야 하다는 주문도 많다.

여기에는 국내 금융산업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섣불리 시장을 개방했다가는 자칫 외국 투기자본의 배만 불리게 해 줄 것이라는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이와함께 자산운용업 중심의 특화 금융허브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지역특화 금융수요를 개발하고 한국투자공사(KIC)를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투명하게 설립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앞으로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글로벌 경제가 지역블록화 과정으로 가는 마당에 한국이 소비시장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자본과 기술을 연계할 수 있는 금융허브로 반드시 가야한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 ucool@fnnews.com 유상욱 고은경기자

■사진설명

15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동북아 금융허브 1주년 기념 세미나 '21세기 번영의 길 동북아 금융허브' 행사에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참석,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