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주가 1000P돌파의 조건/조태진기자

조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12.28 12:19

수정 2014.11.07 11:04


얼마 전 KT&G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투자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름만 대면 익히 알 수 있는 상장업체의 자산운용 담당자였던 그는 영국계 TCI펀드가 경영진과의 갈등으로 인해 물량을 털고 나갈 가능성에 대해 물어왔다.

헤르메스펀드가 삼성물산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주가가 급락했던 사례가 재연되는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KT&G가 민영화 이후 수익경영 강화, 고배당 등 장기투자 메리트가 있다는 설명과 함께 TCI 지분이 경영권에 위협이 될 정도가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그는 대뜸 “우선 외국인투자가가 물량을 내놓는지 여부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할 뿐이었다.

한마디로 외국인이 매도하면 같이 지분 털기에 나서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이라는 수급 변수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주식에 관심있는 투자자라면 한국이야말로 세계 증시에서 가장 저평가된 시장이라는데 대체로 공감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단기 주가 흐름에만 몰두한 나머지 미세한 충격에 편승하며 ‘태풍’으로 확대시키는 투자자들의 자세는 분명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외국인이 국내 주식시장에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바라볼 정도로 투자 가이드로서 꼭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기업가치는 제쳐두고 무조건 외국인이 단기적으로 어떤 포지션을 취할 것인지에만 관심을 두는 투자자들의 자세는 국내 주식시장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위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올해 들어 외국계 펀드가 지분 매입 사유로 경영권 참여를 명시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국내 투자자의 어리석은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모 외국계 증권사가 개최한 상장업체 투자설명회에 상당수 헤지펀드가 참여해 관심을 보였을 정도가 아닌가.

증권당국이 외국계 펀드의 시세 조종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지만 이러한 인위적인 조치가 ‘또다른 SK’ ‘또다른 삼성물산’의 출현을 막는데 한계가 있다.


내년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 돌파라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증권사가 잇따르고 있다. 그만큼 국내 기업가치는 장기적인 지수 추세 상승을 뒷받침할 만큼 탄탄하다는 증거다.
그러나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외국인 눈치만 보는 투자 패턴이 사라지지 않는 한 ‘네자리 지수’ 시대 개막은 또다시 헛된 구호로만 끝날 것이다.

/ anyung@fnnews.com 조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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