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에서]증권가 ‘숫자 스트레스’/차석록 증권부 차장

차석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2.18 12:34

수정 2014.11.07 21:25



사람들은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는 4는 죽을 사(死)라 해서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7은 행운을 뜻하는 러키세븐의 영향을 받은듯 인기가 좋다. 특히, 성서에는 성스러운 일은 모두 7로 나타난다. 천지창조도 7일 동안 했고 십계명에 보면 7번째 날은 쉬라고 했다. 8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수다.
일본글자로 8은 점점 벌어지는 모양이라 해서 길한 숫자라 여긴다고 한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에는 짐승의 수라고 하는 숫자 666이 실려 있어 기독교신자들은 터부시하는 편이다. 서양에서는 또 13을 싫어한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을 배반한 가롯 유다까지 합해서 제자가 모두 13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의 이집트인들은 인생의 13번째 단계는 죽음이며 좋은 뜻으로 해석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번뇌를 담은 108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또 이사업체들은 24라는 숫자에 웃돈을 얹어주고 번호를 산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뭐니뭐니해도 1∼45 숫자 가운데 6개를 맞히면 인생역전이 될 수 있는 로또복권의 숫자가 가장 인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최근 증권가에서 ‘1000’이라는 숫자와 ‘50’이라는 숫자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이들이 적지않다. 올 들어 주식시장이 급등해 지수 1000 고지를 눈앞에 두면서 이를 넘느냐 마느냐로 피를 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증시가 1000을 넘을 것으로 예측한 전문가들은 한손에 샴페인을 들고 숨죽여 넘기만을 주시하고 있고 1000 이하로 전망한 전문가들은 예측이 빗나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1000 이하로 전망한 모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시장이 급등하자 엄청난 스트레스로 짜증이 늘었다는 후문이다. 정확한 예측이 생명력인 리서치센터장으로서는 피가 마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999와 1000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다.

주식시장이 급등하는 것과는 달리 증권가는 구조조정의 찬바람이 불고 있다. 4개 기관이 합쳐진 증권선물거래소가 100명 가까운 인원을 정리했고 앞으로도 증권사를 비롯한 증권예탁원·증권전산 등이 구조조정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희망퇴직의 경우를 제외하면 퇴출대상 기준을 나이로, 즉 50대로 선을 긋고 있다. 명확한 퇴출기준을 잡기 어렵기 때문에 나이로 자르는 것이 가장 간편하다고 모 기관인사는 말한다. 50대인 모 증권기관 관계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50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한창 일할 수 있는데도 퇴출돼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업(조직)의 입장에서는 생존이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용조정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꼭 한솥밥을 먹던 직원들을 차가운 거리로 내몰아야하는 방법뿐이 없는지 안타깝다. 모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의 “무책임한 구조조정은 가정파괴”라는 말을 다시 한번 곱씹게된다.
숫자는 숫자일뿐인데 우리는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고민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cha1046@fnnews.com 차석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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