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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통신업계의 ‘혈의 누’/양형욱기자



얼마전 한국영화 ‘혈의 누’를 보았다. 이 영화는 19세기 조선시대 말엽, 제지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외딴 섬 마을 동화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에 얽힌 내용이다.

연쇄살인사건은 7년 전, 역모를 이끈 천주교도와 한패로 낙인찍혀 온 가족이 참형을 당한 강객주의 원한을 풀기 위한 복수극. 당초 동화도 제지소 경영자였던 강객주는 마을사람들로부터 신망을 얻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재물에 눈이 먼 ‘다섯 사람의 발고자’가 강객주를 범법자로 모함해 일가족까지 극형을 당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25일 요금 담합을 이유로 KT와 하나로텔레콤에 각각 1130억원과 21억5000만원이라는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한 뒤 영화 ‘혈의 누’가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곱씹어보니 ‘공정위 과징금 처벌’과 영화 ‘혈의 누’에는 ‘발고자’라는 공통적인 존재가 등장했다.

‘혈의 누’에서 강객주 일가가 ‘다섯 사람의 발고자’로 인해 처참히 처벌 받았듯이 KT가 공정위로부터 1000억원대의 과징금을 받게 된 과정에는 하나로텔레콤의 자백이 일부 작용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하나로텔레콤은 공정위의 추궁에 KT와의 담합을 시인했다. 아울러 담합을 증명하는 일부 자료도 공정위에 건네줬다. 대신 하나로텔레콤은 49%의 과징금을 감면 받았다.

KT는 하나로텔레콤을 과징금의 ‘원인제공자’라며 치밀어 오르는 화만 속으로 삭이고 있다. 단순히 금전적 손실을 떠나 통신사업자간 신뢰성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양사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물론 하나로텔레콤의 행위가 위법일 수 없다.
또 KT가 떳떳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처벌의 정당성을 따지기 어렵다. 다만 동료 사업자로부터 도의적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눈만 뜨면 ‘상생’을 외치던 통신업체들이 아니던가. 이번 주말엔 통신사업자 최고경영자(CEO)들이 함께 영화 ‘혈의 누’를 관람하면서 ‘상생’의 의미를 되새겨 보길 바란다.

/ hwyang@fnnews.com 양형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