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경제의 병을 고치려면/이상묵 삼성금융연구소 정책연구실장·경제학 박사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6.06 13:07

수정 2014.11.07 17:50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가 잘못하는 경우는 여러 가지다. 병이 없는 멀쩡한 사람을 보고 병에 걸렸다고 하는 수도 있고 병이 있는 사람을 멀쩡하다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병은 병인데 엉뚱한 병에 걸렸다고 진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또 병명은 제대로 짚었는데 치료법이 서툴러 고생시키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환자는 제대로 된 의사를 만났으면 피할 수 있는 불필요한 고통을 겪게 마련이다.

병이 없는 멀쩡한 사람에게 병이 있다고 ‘오진’하면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로 시간과 돈을 허비하고 마음의 불안을 겪는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런 계기로 정밀검사를 받다가 초기 상태의 암을 발견하는 행운도 누릴 수도 있다.

병이 있는 사람에게 병이 없다고 오진하는 경우 병을 조기에 치료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해서 병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몸에 이상한 증세가 지속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환자는 조만간 다른 병원을 찾게 되는 게 보통이다. 이런 종류의 오진은 오진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도가 덜하다.

의사가 엉뚱한 병으로 진단을 잘못 내리는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의사가 일단 병명을 제시하고 나름대로 치료를 하는 동안 환자는 그 의사에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잘못된 진단으로 치료가 지연되더라도 의사는 환자의 체질이 특이해 병의 치료가 더디다고 둘러댈 수 있다. 그러면 환자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두번, 세번 의사의 거짓말이 계속되고 차도를 보여야 할 병이 오히려 깊어지면서 환자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환자의 불안감이 한계에 이르러 다른 병원을 찾을 즈음에는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경제를 두고 여러 가지 진단과 처방이 제시돼왔다. 정상적인 사람도 컨디션이 나쁠 때가 있듯이 우리 경제도 일시 컨디션이 나쁜 것에 불과하다는 진단이 있었다. 병중의 병은 마음의 병이고 멀쩡한 사람도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앓아눕게 된다며 마음을 강하게 먹자는 진단도 있었다. 또 몸은 자생력이 있어서 웬만한 병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치유되므로 조그마한 이상 증세에 괜스레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진단도 있었다.

연초에 소비심리가 다소 호전되면서 이런 진단이 옳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이상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1·4분기 성장률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2·4분기에도 1·4분기 정도의 성장률밖에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진단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재벌 중심의 집중된 경제구조가 병의 근본 원인이라는 진단도 있다. 이런 진단은 나온 지가 꽤 된다. 지난 1980년대 이후 끊임없이 제기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권은 만병의 원인이 재벌 문제에 있으므로 기필코 재벌을 개혁해 병을 치료하겠다고 국민에게 선언하곤 했다. 그 결과 많은 국민이 우리 경제의 병이 진정으로 재벌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진단에 따라 기업집단에 대한 여신관리제도, 출자총액제한, 상호지급보증 금지라는 처방이 가해졌고 최근에는 소유지배구조의 개선, 금융과 산업의 분리라는 처방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 병은 호전될 기미가 없다.
그러자 약으로는 되지 않을 병이니 칼을 대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0년 이상을 동일한 진단에 따라 치료를 받았는데도 병에 차도가 없다면 이제는 오진 가능성을 의심해 봄직도 하다.
그런데도 아직도 환자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설익은 각종 처방이 실험되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 것을 우직하다고 칭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우둔하다고 나무라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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