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계신칼럼]‘선한 사마리아인’의 죽음 앞에서/송계신 논설위원

송계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6.14 13:09

수정 2014.11.07 17:41



날치기범을 붙잡으려다 숨진 재미동포 고 우홍식(미국명 조너선 우)씨에 대한 미국인들과 재미 한인사회의 애도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 미국 캔자스시티 지역의 언론들은 연일 우씨와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사진과 함께 크게 보도하는 것은 물론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 일간지인 ‘캔사스시티스타’가 처음 보도하면서 알려진 이 사건은 지난 5월20일 한 쇼핑센터 주차장에서 미국인 여성의 지갑을 빼앗은 날치기범을 우씨가 뒤쫓으면서 발생했다. 우씨는 달아나는 범인을 승용차 안까지 따라 들어가 격투를 벌이는 정의감을 발휘하다 중상을 당하고 말았다.

범인은 결국 붙잡혔지만 심한 내출혈을 일으킨 우씨는 3주에 걸쳐 수차례 대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간 우씨는 캔사스시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광고회사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었다.


미국인 부인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과 행복한 삶을 꿈꾸던 그는 오는 8월 출산을 앞둔 부인을 남기고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것이다. 우씨의 슬픈 사연이 보도되자 ‘캔사스시티스타’의 온라인 부고란에는 “의로운 영웅을 잃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떠났다”며 애도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성경에서 이웃사랑에 대한 비유로 나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그는 옷이 벗겨지고 상처를 입은 채 죽어가는 상태로 길 옆에 버려져 있었다. 얼마 후 제사장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그를 보았으나 못본 채 무시하고 지나갔다. 다음에는 레위인이 그를 발견했지만 외면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에게 다가가 포도주와 기름을 적셔 상처를 씻겨주고 싸매주는 치료를 해주었다. 사마리아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을 주막으로 데려가 밤새 간호하며 보살폈다. 다음날 사업상 길을 떠나야 했던 사마리아인은 주막 주인에게 은전 두닢을 주고 부상당한 사람을 돌봐줄 것을 당부하면서 “만약 돈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는 약속까지 했다는 내용이다.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지금의 이스라엘 민족 조상인 유대인들로부터 천대받고 멸시받았던 사람들이다. 특히 기원전 8세기 초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멸망한 이후 아수르(아시리아) 제국의 혼혈정책에 의해 혈통과 종교가 뒤섞이면서 사마리아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배척이 더욱 심해졌다. 그런 사마리아인들이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돕기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도 습격당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더욱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인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정성껏 보살필 수 있었던 것은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착한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선행을 그다지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웃이 굶어 죽어도 모르는 세상이 되고 있다. 강도 만난 사람을 곁에 두고도 대부분의 사람은 애써 모른 채 그냥 지나갈 따름이다. 불의한 것을 보면서도 선뜻 ‘정의감’을 발동하지 못할 때도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선행을 베풀려면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고도 고맙다는 말을 듣기는커녕 자칫하면 봉변을 당하기 일쑤이고 책임까지 져야 하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이 생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나서면 나만 손해’라는 각박한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진 점도 무시못할 부분이다.


그러나 자신의 희생 없이는 국가나 사회,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 대해 아무 것도 베풀 수 없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여행에 꼭 필요한 기름과 포도주, 여비를 강도 만난 사람을 위해 썼고 귀중한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선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미동포 고 우홍식씨는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칭송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의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우씨에 대한 최고의 조사(弔辭)는 하루빨리 정의로운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리라.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