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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창간 5주년-블루오션 전략]필립스 日기업 공세로 경영악화



지난 1978년 당시 1억6000만달러라는 사상 최악의 분기별 적자를 기록해 도산 위기에 빠졌던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 크라이슬러는 불과 5년만에 다시 ‘무덤’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회생의 원동력에는 이른바 크라이슬러가 야심차게 내놓은 새로운 종류의 자동차 ‘미니밴’이 있었다. ‘미내밴’은 기존의 밴보다 작지만 공간은 왜건보다 넓어 가족단위 이동수단으로 널리 파급됐다. 크라이슬러는 이 파격적인 모델 하나로 3년도 채 안돼 15억달러를 벌어 들였다.

1963년 캔자스주 한 사업가인 스탠 더우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영화관을 개조키로 한다. 캔자스시티내 한 대형 쇼핑센터에 문을 연 이 극장은 객석의 규모를 줄이는 대신 복수의 영화들을 동시 상영토록 개편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주목받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효시다. 극장 소유주에게는 비용을 낮춰 사업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고객들에게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 시키는 ‘꿩먹고 알먹기’식의 효과를 낳았다.

이처럼 시장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무풍지대’를 파고든 전략이 바로 ‘블루오션’ 전략이다. ‘블루오션’ 전략은 이른바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경쟁’이란 단어를 완전히 무의미하게 만드는 이론이다. 기존의 수요시장에 접근하기보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 그리고 장악해버린다는 점에서 극히 매혹적이다.

특히 기존에 사업 전략은 상존해있는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가치와 비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블루오션’ 전략을 추구하면 가치와 비용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같은 이유로 제너럴모터스(GM), 도요타 등 유수의 기업들은 물론 뉴욕경찰국(NYPD), 싱가포르 정부, 암스테르담 시청 등 공공기관들에까지도 ‘블루오션’ 전략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 중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필립스는 ‘블루오션’ 전략에 가장 충실한 기업으로 주목받는다.

지난 1990년 일본 기업들의 잇따른 공세로 가전시장에서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던 필립스는 대대적인 ‘기업 수술’을 모색한다. 그해 필립스의 경상 적자는 27억달러. 얀 티머 당시 신임회장 등 최고경영진들은 엄청난 부채를 줄이고자 큰 폭의 구조조정을 선택하고 이를 위해 전문가로부터 경영진단을 받기로 결정한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중 한 사람이 바로 ‘블루오션 전략’을 주창한 김위찬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 교수. 그를 비롯해 C.K 플라할라드 미국 미시간 경영대학원 교수와 스만트라 고샬 영국 런던 경영대학원 교수는 필립스 회생방안인 ‘센추리온(Centurion)’ 프로젝트를 마련한다. ‘센추리온’은 2단계 방향으로 설계돼 개편 조직을 갖춘 후 새로운 시장을 찾는 순서를 택했다. 우선 최고 경영진과 핵심 지도교수 3명, 보조 자문교수 100여명, 5개 컨설팅사 600여명의 컨설턴트, 필립스 고위임원으로 구성된 내부 전담팀 10여명, 공장조직 등 총 6개 그룹이 개편조직에 참여했다.

이들 그룹이 필립스의 사운을 걸고 행한 구조조정 규모는 엄청났다. 60여개에 달하던 사업부분을 단 6개로 줄였고 종업원 5만여명을 감원했다. 필립스는 인원 조정외에도 부차적인 보유 자산을 매각하고 전세계에 산재한 생산기지를 과감히 통폐합시켰다. 일례로 세계적인 음반업체로 필립스 계열사중 가장 ‘알짜배기’ 회사였던 폴리그램도 캐나다 영상오락?주류업체인 시그램에 104억 달러를 받고 팔았다. 이후부터는 일본 시장조차 손을 닿지 못했던 가전시장에 적극 뛰어들었다. ‘몸집’이 작아진 만큼 필립스는 새로 시작하는 사업에 대한 기동성은 늘었고 반면 리스크는 줄어들었다.


이처럼 ‘뼈를 깍는 고통’으로 필립스는 ‘센추리온’을 추진한지 3년만에 부채를 절반으로 줄이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리고 1996년 티머 회장이 퇴임함으로써 종료된 ‘센추리온’ 프로젝트는 부실위기에 처한 전세계 기업에 다양한 교훈을 남겼다. 특히 1990년 필립스 본사가 전세계 임원들을 대상으로 처음 구조조정을 설명할 당시 이에 참여했던 신박제 필립스전자 사장은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기억하며 오늘날 국내에서는 ‘블루오션 전도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