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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대출 축소…中企 구조조정 ‘신호탄’



정부가 23일 ‘중소기업 금융지원 체계 개편방안’을 마련, 발표하자 신용보증 양대기관인 신용보증기금(신보)과 기술신용보증기금(기보)에는 제도개편의 내용을 문의하는 중소기업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정부가 혁신형 중기에 대한 보증을 대폭 늘리는 대신 일반보증은 줄이기로 함에 따라 일반보증 대상기업들이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신보에 대한 출연금을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보에 지급하기로 결정키로 해 동반부실 우려와 ‘보증대란’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선별지원 논란=이날 정부대책의 뼈대는 혁신형 중소기업에 보증과 정책자금을 집중한다는 것이다.

혁신형 중소기업이란 벤처기업이나 이노비즈(Inno-biz)와 같은 기술력이 있는 업체를 말한다. 반면 정부지원으로 연명하는 기술력이 없는 업체들은 앞으로 보증을 받기 어렵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그동안 보증업무가 마구잡이식으로 이뤄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업계 현실상 혁신형 중소기업과 일반기업을 확연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한쪽에 보증을 몰아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 장비업체의 한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기술력이 있다고 정평이 난 벤처업체들도 국내 보증기관의 심사에서는 ‘기술력 없음’으로 판정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과연 혁신형이냐 아니냐의 옥석을 가려내는 일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고 반문했다.

또한 신용평가기관(CB)들도 중소기업의 기술력에 대한 정략분석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신용보증업계는 기술평가 인력을 보강하는 등 보완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전문가 영입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기술평가 관련 전문가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털어놓고 있다.

◇3만6000여 중기, 보증대란 우려감 고조=정부는 지난 22일 당정협의를 거쳐 올 하반기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금융회사들이 신보에 내야 하는 출연금 2500억원 전액을 배정해 주기로 했다. 보증 사고 증가로 자금 부족상태에 빠진 기보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윗돌을 빼 아랫돌을 괴는’ 임시방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자칫 신보마저 부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신보의 자산감소로 인해 신보를 통한 보증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여 하반기 중소기업들의 보증대란마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신보에 대한 출연금 2500억원이 감소할 경우 약 5조원의 신규보증이 불가능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자산대비 보증금액의 적정성과 업체당 평균 보증금액 1억3600만원을 적용했을 때 산출된 금액으로 모두 3만6000여개 업체가 보증을 받을 수 있는 규모다. 결국 기보 경영난을 돕기 위해 신보 출연금을 줄일 경우 수만개의 중소업체가 보증을 못받아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경영사정이 어려운 기보는 올 하반기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일반보증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회수에 나서는 한편 신규보증은 완전 동결하기로 했다. 여기에다 신 국제협약인 바젤Ⅱ 시행을 앞둔 은행들은 중기 신용대출을 줄이는 추세여서 중소·벤처업체의 자금사정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전망이다.

◇추경예산 편성이 근본대책=문제는 기보, 신보의 보증축소가 하반기 한꺼번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 전문가들은 보증 규모를 점진적으로 낮춰야 ‘보증대란’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강대 경제학과 남주하 교수는 “보증제도의 개선방향은 기계적이고 인위적인 규모의 축소보다 제도 자체의 효율화를 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교수는 또 “담보 부족으로 중소업체들의 은행대출이 어려운 현실에서 보증제도는 상당기간 존속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돈가뭄에 시달리는 업체들에 보증기관은 ‘마지막 비상구’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추경예산을 짜 기보에 지원해야 한다는 권고도 나오고 있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기보부실의 문제를 전적으로 기보의 방만한 경영의 결과물로 돌리는 정부의 시각은 책임 떠넘기의 전형”이라며 “비록 전 정권의 잘못이지만 이제라도 국회에 추경편성을 요구해 근본적으로 자금난을 해소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이 기업 신용평가에 대한 능력을 키우는 한편 기업대출에 대한 인식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정부정책의 방향성이 정권에 따라 너무 큰 차이를 보임에 따라 업계의 충격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DJ정권은 보증확대를, 참여정부는 보증축소로 180도 방향을 튼 셈이어서 기업들이 갈피를 못잡고 있다는 얘기다.

/ namu@fnnews.com 홍순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