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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에서]엽관제와 원칙/차상근 정치경제부 차장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이 ‘스포일스 시스템’ 즉 ‘엽관제’를 거론해 세간의 관심을 다시 끌 모양이다.

공기업이나 정부 산하기관 등의 대표 자리에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이나 선거에서 낙선한 여당 인사들이 대거 진출하는데 대해 비난 여론이 일자 23일 김수석이 해명하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관직을 사냥한다는 한자어의 뜻을 가진 엽관제는 공무원의 임면을 당파적 충성심에 의해 결정하는 정치적 관행을 뜻한다. 유래는 공무원의 정실임면이 당연시됐던 절대군주제에서 의회정치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왕의 관리를 정당이 의회 등의 정치인으로 바꾸면서 대량의 엽관을 하면서 일반화됐다.

오늘날에는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선거운동원과 그 정당의 적극적인 지지자에게 관직을 임명하거나 다른 혜택을 주는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관행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미국이다. 지난 1828년 7대 대통령에 당선된 앤드루 잭슨이 “엽관제는 공직의 민중에 대한 해방과 공무원에 대한 인민통제의 역할을 지닌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엽관제의 관행이 확립됐다.

이후 1830년 잭슨 대통령이 측근인사들로 각료를 임명하는데 대한 여론이 들끓자 상원의원이었던 마시가 이를 두둔하며 “전리품은 승리자의 것”이라고 말한 이후 유명해졌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면서 엽관제는 후퇴했다. 정당과 독점자본이 결탁해 자신들의 세력 확대에 엽관제를 이용하면서 당파적 관직 독점의 폐해나 정치부패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이후 엽관제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메리트시스템(자격임용제)이 채용됐다. 하지만 아직도 엽관제는 고위 관직을 위주로 남아 있어 대통령이 한번 바뀌면 3500개의 고위직이 물갈이된다. 미국민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는 지 우리처럼 ‘낙하산’이니 ‘보은’이니 하며 요란하지 않다.

김수석은 이날 정당정치는 책임정치라고 했다. 미국처럼 하지는 못하더라도 대통령이 봤을 때 정당에서, 정치권에서, 정부에서 잘 훈련된 사람을 재배치해서 활용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밀실에서 적당히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과거 정권과 비교해보면 일리있는 말이다.

엽관제의 시조격인 잭슨 대통령은 대중 민주주의, 서민 대통령 등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여러가지 정치적 공통점을 지녀 이번 정부 들어 곧잘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노대통령도 한번씩 잭슨 대통령의 이야기를 인용하곤 했다. 엽관제를 ‘닮은꼴’ 두 대통령에 오버랩시키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르지만 두 대통령이 하고 있는 일은 분명 유사하다. 기존 기득권 질서의 물갈이, 개혁을 기치로 내건 두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철학을 이해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행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주요 자리에 배치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 미국 수준 이상의 인적 교체가 이뤄져야 할 지도 모른다. 나아가 미국처럼 특정직에 대한 집권자의 고유 인사권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에서 보면 김수석의 엽관제 이야기는 이런 뜻에서 나왔으리라 짐작된다.

논공행상식의 인사 폐해는 미국식 엽관제의 실패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도 무수히 재연돼 왔다는 점은 거론하고 싶지 않다. ‘원칙’을 만들고 그 원칙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개혁이다.

/ csky@fnnews.com 차상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