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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위성DMB와 한국의 IT산업/윤봉섭 정보통신부장



최근 개최된 각종 정보기술(IT)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을 가장 오랫동안 붙잡는 것은 단연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서비스다. 선명한 화질과 음질, 탁월한 수신 감도에 해외 전문가들조차 감탄사를 연발한다.

한국을 방문한 해외 IT업체 최고경영자(CEO)들도 앞다퉈 이 서비스를 체험하고 돌아간다. 이 ‘손 안의 TV’가 성장 정체로 시름하는 국내 IT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올 것이라고 부러워한다. ‘IT 839’ 전략으로 경제 성장을 촉진하려는 정부도 8대 핵심 서비스의 하나로 이 위성·지상파DMB 서비스를 꼽았다. 해외의 부러운 시각이 아니더라도 한국은 확실한 신 성장동력 하나를 보유하게 된 셈이다. TU미디어가 위성DMB 서비스를 상용화한 지 이틀 만에 5000여명의 가입자를 유치한 것을 보면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거운 것을 알 수 있다.

위성DMB는 방송 서비스뿐만 아니라 장비 단말기 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엄청나다. 세계 단말기 시장은 오는 2007년까지 최소 3500만대 판매로 매출 규모는 52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연간 30조원 정도의 시장이 창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요즘 위성DMB를 바라보면 장밋빛 전망은 곧바로 시들어버린다. 현재 위성DMB 서비스를 통해서는 KBS, MBC, SBS 등 지상파방송을 볼 수 없다. 지상파DMB 서비스 정상화 이전까지 위성DMB에 지상파 재전송을 허용할 수 없다는 방송사들의 입장 때문이다. 방송 콘텐츠 경쟁력에서 압도적인 방송사들이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으면 위성DMB 서비스의 활성화는 크게 지연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기술과 서비스 품질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반쪽’ 서비스가 되는 것이다.

방송사들의 강경한 입장은 방송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내부의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방송사가 추진중인 지상파DMB 서비스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쟁 구도를 손 놓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위성DMB와 지상파DMB가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시작하자는 논리다.

문제는 시간이다. IT산업은 다른 무엇보다도 시간을 다투는 분야다. 따지고 보면 통신 인프라는 접속과 이용에 따르는 시간을 줄이는데 목적이 있다. 초고속인터넷이나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와이브로 등 차세대 IT 인프라가 모두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다. 업체들은 속도를 높이고 시간을 벌기 위해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투자 비용을 지출한다. 이런 경쟁에서 위성DMB 서비스의 활성화 시기를 늦추는 것은 경쟁력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지금 열린 IT 시장 속에 살고 있다. 닫힌 시장이라면 국내의 경쟁만을 염두에 두고 경쟁의 시기와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열린 시장에서 서비스의 활성화 시기를 스스로 늦추는 것은 자해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당장 해외시장을 겨냥해온 위성DMB 장비 단말기 업체들은 할 말을 잃고 있다. 시장 선점 기회가 눈 앞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와 통신업체들이 싸우는 동안 중소업체들은 제대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고 있다.

DMB 서비스의 조기 활성화는 콘텐츠업체들에도 중요한 이슈다. 채널이 다양해지면 다양해질수록 콘텐츠산업의 파이는 그만큼 커진다. 최근 통신업체들이 앞다퉈 콘텐츠업체를 인수하고 영화 음악펀드를 조성하려는 것도 새로운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자본과 왕성한 창의력이 결합할 경우 우리나라가 그동안 취약했던 소프트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다. 위성DMB 서비스의 조기 활성화를 보다 큰 견지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다.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인 뉴스코프의 루퍼트 머독 회장은 최근 직접 한달간 인도를 답사한 후 현지 타타그룹과 손잡고 위성방송채널을 출범시켰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방송시장인 인도를 눈여겨 본 덕이다. 성장성이 높은 터키와 우크라이나 시장에서도 진출 기회를 타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미국 NBC방송은 지난해 이미 프랑스의 비방디를 인수했다. 세계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이미 변화의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는 컨버전스의 시대다.
변화를 외면하면 어느 순간 새로운 시장 판도 속에서 우리의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국내의 작은 파이를 지키기 위해 해외의 거대 시장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도 안되지만 자칫 변화를 거스르면 우리의 파이마저 잃게 된다. 컨버전스 시대에는 시장 참여 주체들의 강점을 가장 긴밀하게 결합할 때만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