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재미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건데요.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게 바쁘지만 모든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이처럼 활기와 열정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동시통역사 최정화 교수(50·외국어대). 그를 처음 본 순간 머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부터 먼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활력이 느껴졌다. 음성, 표정, 웃음, 눈빛, 걸음걸이 할 것 없이 온몸 구석구석 생생히 깨어있는 사람으로 다가왔다. 그런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는 법. 같이 얘기만 해도 생기발랄한 기운이 전해져와 머리가 맑아졌다.
최 교수는 1978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불문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파리로 건너가 파리 제3대학 통역번역대학원(ESIT)에서 1986년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통·번역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 동시통역사다.
지금에야 고수익에 명예까지 얻을 수 있어 통역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지만 그때는 이름마저 생소한 직업이었다. 그저 말하는 것이 읽고 쓰는 것보다 좋아 망설임 없이 유학길에 올랐지만 모든 일의 첫걸음이 그러하듯 자존심은 무너지고 잠은 늘 부족한 날들이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하면 할 수록 최 교수는 일에 미친 듯 빠져들었다. 통역은 그에게 그만큼 매력적인 일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IPU총회, APEC회의, ASEM 정상회의 등 1800여회 국제회의를 통역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 5명의 정상회담을 12차례 통역한 진기록의 소유자다. 그리고 그 공로로 1992년 프랑스 교육공로훈장과 2000년 다니카 셀리스코비치상을 받았으며 2003년에는 한국 여성 최초로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훈하기도 했다.
28년간 통역을 위해 돌아다닌 나라만도 68개국에 달한다. 여러나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최 교수는 늘 세계 속에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 아쉬웠다.
“우리나라는 경쟁력이 있고 훌륭한 나라예요. 삼성 핸드폰이나 황우석 교수의 업적으로 세계가 떠들석 하잖아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가 이미지가 그 만큼을 못 따라가요. 국제의원연맹(IP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 선출에서 우리나라 후보들이 계속 떨어지는 것도 결국은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죠.”
통역은 사람들의 대화를 이어주는 일이다. 그 일을 계속 하다보니 그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경쟁력이고 국력이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한국의 위상을 높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2003년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지능지수(IQ)와 감성지수(EQ)가 있듯이 이제는 의사소통지수(CQ·Communication Quotient)가 필요한 때예요. 작게는 개개인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고 크게는 세계에 우리를 알리는 거죠. 이제 한국이 훌륭한 나라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요. 세계가 그걸 얼마만큼 아는가가 중요하죠.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세계에 심는 일, 제 힘으로 하고 싶어요.”
이처럼 우리와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 중심에 서 있는 최 교수이지만 대면한 그는 그저 포근하고 편안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많은 일을 이루며 살아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일종의 ‘독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릴 적에는 반 아이들 앞에서 노래 한곡 하라고 세워 놓아도 바로 울어버렸어요. 남들 앞에 서서 뭔가 말을 한다는 건 저한텐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안 믿기죠?”
최 교수는 가만히 되짚어 아마도 상황이 자신을 변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성적이 좋아서 줄곧 반장을 하다보니 서서히 남들 앞으로 나서게 됐고 고등학교 때는 연설 한번 제대로 못했지만 전교 부회장이 됐다. 그저 말하는게 좋아 택한 직업도 남들 앞에 서는 일의 반복이었으니 성격이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따르면 지금은 ‘좀 심하게’ 낙천적이다. “남들보다 하나 잘하는 게 있다면 생각한 걸 바로 실행에 옮긴다는 거예요. 앞으로의 일은 별로 고민하지 않아요. ‘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살지요.”
개인이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겠다고 나선 ‘무대포식’ 시작이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체의 CEO들을 비롯해 오명 부총리, 황우석 박사, 지휘자 정명훈 등 각계 인사들이 기꺼이 함께 해주었다. “그 바쁘다는 정명훈씨도 5시간이나 가만히 기다려줘요. 내 부탁에는 도저히 ‘No’를 못하겠데요. 조그만 사람이 혼자 종종 뛰어다니니까 안쓰러운가보죠(웃음).”
겉으로 보기에는 상황이 그를 돕고 있지만 어쩌면 온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이 사람들을 감동시켜 온건지 모른다. 성격이 낙천적으로 바뀐 것도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스스로의 힘을 믿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더이상 내 외국어 학습법에는 관심이 없어요. ‘도전과 성취’와 같은 주제들로만 강연을 부탁해요. 사실 별로 해줄 말은 없어요. 그냥 내 일상 얘기를 편안하게 들려주죠. 그래도 그 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생산성이 눈에 띄게 늘어난데요.”
공자가 그런 말을 했다. ‘아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낫고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즐기는 사람이 낫다’고. 최교수를 보며 그는 진정 나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알고 좋아하며 충분히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늘 빡빡한 하루지만 일이 좋아 스트레스도 없다고 한다. “참 행복한 분인거 아세요, 교수님?”라며 진심을 담아 물었다. 그저 환한 웃음 소리로 답하는 그는 말 그대로 ‘행복한 열정 전도사’였다. 돌아서는 발걸음에 힘이 솟고 마음속엔 행복이 꽉 찾아들었다.
/ seilee@fnnews.com 이세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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