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세계경제 불확실성 걷어내야/조지프 스티글리츠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1.01 14:04

수정 2014.11.07 00:54



무한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미국’이라는 소비자는 2005년에 세계 경제가 비록 2004년보다는 느리지만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는 데 일조해 또 한 차례의 신기원을 이뤄냈다. 최근 몇년간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소득을 모두 지출하거나 소득보다 더 많이 소비해왔다. 미국 전체로도 재력을 넘어서는 수준의 지출을 했고 결국 2005년에는 무서운 속도로 전세계에서 돈을 꿀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매일 빌린 돈은 평균 20억달러가 넘는다.

1년 전,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현상은 지속 가능한 것으로 판명났고 최소한 2005년 한 해는 더 이같은 흐름을 이어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이 지속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여전히 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2006년에 미국과 세계 경제가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가지 경제적으로 경이로운 사건이 2005년에도 호시절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간을 늘렸다. 첫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단기 이자율을 지속적으로 올렸지만 장기 금리는 이에 걸맞게 오르지를 않았고 덕분에 주택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를 수 있었다. 이는 세계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세계 최대 경제(미국 경제)의 원동력은 최근 몇년 간의 부동산 호황이었기 때문이다. 개인들은 주택 모기지를 통해 대출을 더 받을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생긴 여윳돈 가운데 일부를 소비하는 데 썼다. 부동산 투자 열풍에 따른 집값 상승은 또 주택 건설을 부추겼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지속되기 어려운 것이다. 장기금리는 거의 틀림없이 ‘궁극적으로는’ 오르기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기금리는 내년에 ‘궁극적으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더 많은 돈을 빚을 갚는 데 써야 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는 데 쓸 돈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의 급속한 오름세가 곧 멈출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그 결과 모기지를 통한 대출 확대는 서서히 멈추게 돼 더 이상 미국인들의 흥청망청 소비를 지속시켜 줄 돈이 주택에서는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총수요는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현금이 넘쳐나는 기업부문에서 이 공백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로 투자를 늘릴 수 있을까.

낡은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총투자가 어느 정도 늘어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혁신이 이뤄지는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는 일부 징후들 또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지난 5년간 연구개발 투자가 줄어든 데 따른 결과일 것이다.

어떤 경우이건, 설령 기업들이 많은 현금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통상 소비가 줄어드는 동안에는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 경제의 불확실은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는 데 꺼려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높은 투자 증가가 소비 둔화를 상쇄하기보다는 오히려 투자 둔화가 소비 둔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내년 미국과 세계 경제 전망을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요인이 이것만은 아니다. 2005년의 두번째 놀라운 사건은 유가가 예상보다 훨씬 큰 폭으로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최소한 올 연말까지는 경제를 둔화시키는 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일례로 고유가로 인해 미국의 수입석유 소비는 연간 기준으로 약 500억달러 어치가 늘었다. 유가가 오르지 않았다면 이 돈은 대부분 미국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사들이는 데 쓰였을 것이다.

2005년 내내 미국인들은 마치 고유가가 당분간은 이어지겠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할 것이라고는 정말 믿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놀랍기만 한 일은 아니다. 계량경제 분석에 따르면 유가 상승에 따른 모든 효과가 피부에 와 닿으려면 1∼2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미 원유 선물시장에서는 앞으로 2년간 유가가 배럴당 50∼60달러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연료를 많이 쓰는 이른바 ‘기름 잡아먹는 차’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고 있다. 이는 저유가와 미국인들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사랑에 판매전략을 맞춰 온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경영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유가는 세계 여타 국가의 경제적 성과도 악화시키게 될 것이다. 비록 이들 국가의 성장 전망이 미국의 성장 전망보다는 높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중국의 성장세는 계속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실제로 수정된 국내총생산(GDP) 통계는 중국 경제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20%나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우기 중국의 급속한 성장은 아시아 경제 전반적으로 효과를 미친다. 중국 경제가 영향을 미치는 국가에는 (조금은 조용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일본도 포함된다.

유럽은 여전히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거의 모든 이들의 예상과 달리 유럽 경제의 확실한 회복을 위해 추가 경기부양책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금리를 올렸다. 이 정도로는 속이 차지 않는 듯 독일의 새 정부는 세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적절한 때에 적재적소에 예산을 집행하는 방향으로 재정정책을 펼치는 것은 추천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독일 정부의 정책은 대상이 잘못됐을 뿐더러 시기도 적절치 않다. 세금 인상으로 독일 경제의 회복 기대감이 수그러들 것이다.

2006년에 맞닥뜨릴 주요 위험 요인은 오랫동안 미국 안에서 곪은 문제들이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다. 투자자들이 마침내 대규모 구조적 재정적자, 엄청난 무역적자, 높은 가계빚 등을 우려하기 시작하면서 앞뒤 잴 것 없이 미국에서 돈을 빼내게 될 것이다. 또 금리 인상과 부동산 시장 하락세가 소비 수요를 감퇴시키고 미국 경제를 다시 불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 시장에 의존하는 다른 국가들의 수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건, 이미 막대한 적자로 무력해진 미국 정부는 경기 역행적인 재정정책을 쓰고 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떨어질대로 떨어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 관리능력에 대한 신뢰만큼이나 저조한 부시 대통령의 경제관리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를 감안할 때 앞서 언급한 위기 가운데 하나라도 현실화될 경우 위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으로 걱정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2006년은 단순히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는 해로 끝나지는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계 경제 안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여타 지역의 약세를 상쇄할 만큼 크지 않다. 미국 역시 수렁에서 헤맬 것이고, 이는 미래에 갚아야 할 빚을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 2006년은 세계경제의 성장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증하는 해로 남을 것이다. 성장의 과실을 분배하는 문제가 여전히 비관적으로 전망되는 바로 그 시기에 말이다. 미국의 경우 최소한 2006년은 오르지 않은 채 묶여 있는 실질임금으로 인해 중산층의 생활수준이 현 수준에서 꽁꽁 얼어붙거나 심지어는 더 떨어지는 또 다른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세계 모든 곳에서 내년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또 다른 한 해로 남을 것이다.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기자

Copyright: Project Syndicate 2005. www.project-syndicate.org (원문은 fnnews.com)

■스티글리츠 약력·학문 세계

세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우리에게 친숙한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1943년 미국 인디애나주 개리에서 태어나 암허스트 대학을 졸업했다.

1967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폴 새뮤얼슨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70년 예일대 교수로 발탁됐다. 그의 나이 불과 26세 때였다.

이후 옥스퍼드대와 프린스턴대를 거쳐 스탠퍼드대 경제학 석좌교수를 역임했고, 1979년에는 40세 이하의 독창적인 경제학자에게 주는 '존 베이츠클라크 메달'을 수상했다.

스티글리츠는 지난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의 백악관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을 맡아 정부개혁을 주도했다. 또 97년에는 세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재직하면서 아시아 외환위기에 대응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 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상품, 금융, 노동시장에 나타나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관한 연구'로 지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스티글리츠는 시장을 그대로 내버려 둘 경우 각 경제주체들 사이에 정보의 불균형이 일어나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발생해 시장 그 자체로서는 최고의 결과를 내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실에서는 정보를 얻는 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완전경쟁시장 가설의 근거가 되는 완전정보라는 것이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에 기초한 것이다.

그의 이론은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됐으며 선택적으로 정부가 간섭함으로써 시장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스티글리츠의 이론은 현재 경제학자들 뿐만 아니라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에게 활발히 응용되고 있다. 그는 이 이론 덕에 통화정책이론과 거시경제, 기업재무(Corporate Finance) 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펴낸 경제학 서적들은 12개 국어 이상으로 번역돼 팔려나갔으며,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이라는 책은 28개 국어로 번역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최근작으로는 '포효하는 90년대(Roaring Ninties)'가 있다.


그는 '경제전망 저널(Th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창간도 주도했다.

/ cameye@fnnews.com 김성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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