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외국계 기업과 R&D 센터의 명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1.06 14:14

수정 2014.11.07 00:46


외국계 기업 67개사 제품이 점유율 1위에 올라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반면 ‘동북아 연구개발(R&D) 허브’ 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외국 연구소의 국내 진출은 극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시장의 글로벌화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반면 정부 주도의 정책은 그렇지 못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진출 외국계 회사 가운데 매출액 상위 25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해외 글로벌 기업의 국내 진출 현황’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138개사 제품이 시장 점유율 1∼3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기저귀를 비롯해 김치냉장고, 가스 레인지, 조명기구, 고혈압 체료제 등 생활 필수품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소비자가 아무런 심리적 거부감 없이 이들 기업 제품을 사 쓰고 있는 것은 소비 의식이 그만큼 글로벌화됐음을 뜻한다. 소비를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의존하던 시대는 막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209개 외국 기업 연구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85%가 국내에 기술을 이전한 사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이들 외국 연구기관의 정착률도 기대 이하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32개 연구소가 신설된 반면 42곳은 폐쇄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치 대상 연구소 가운데 40% 이상이 연구개발 거점으로 중국과 일본을 꼽고 있으며 한국은 5%에 지나지 않는다.

글로벌 제품이 국내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공급자와 소비자의 이익이 맞아떨어진, 이른바 시장 기능이 자연스럽게 작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동북아 R&D 허브’와 연관해 연구소 유치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이를 주도하고 있는 정부와 유치대상 기관의 이익이 접점을 찾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봐 틀리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지역균형 발전 정책은 유치 대상 기업의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때로는 지역균형 발전과 R&D 허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래 가지고는 일본은 고사하고 중국이나 인도와의 경쟁에서도 이기기가 쉽지 않다.
국내 시장 석권에 성공한 외국계 기업의 교훈을 살려 더 늦기 전에 ‘동북아 R&D 허브’ 실현을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