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도시의 경쟁력은 문화와 개성/최병선 국토연구원 원장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1.25 14:18

수정 2014.11.07 00:21



요즈음은 외국 여행이 국내 여행만큼이나 흔하다. 여권을 만들기가 매우 쉽고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도 많다. 국민 소득도 꽤 높아져 맘 먹고 저축하면 여비를 마련하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 바람에 관광 부문에서 국제 수지가 크게 적자라고 하지만 그리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개방화된 세계에서 바깥 세상을 많이 아는 것은 자기 계발은 물론, 경쟁력 향상에도 그만큼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스스로에 대한 성찰도 깊어진다.
이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리 도시문화와 삶의 질에 대한 자각이다. 특히, 역사가 오랜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노라면 우리 도시가 무엇인가 크게 잘못됐다는 자괴감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다. 또한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고 해서 물 맑고 산 좋기로 이름 난 나라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 도시 모습에 자부심은 고사하고 자괴감을 갖게 됐을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도시는 국적 잃은 황량한 모습으로 변했다. 도시 모습이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이어서 각자의 고유한 문화와 개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환경이 도처에서 훼손되고 오염돼서 금수강산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이렇게 보여줄 만한 것이 별로 없으니 외국인이 굳이 우리나라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이런 상황이니 관광 산업의 국제 수지가 적자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도시문화, 삶의 질이 이렇게 낙후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컸다는 것이 그 하나의 이유다. 선진국에서 200∼300년에 걸쳐 진행된 도시 성장 과정을 우리나라는 한 세기 만에 마쳤으니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이를테면 100년 전만 해도 20만명에 불과했던 서울시 인구가 지금은 1000만명으로 늘었으니 이런 북새통에 문화와 삶의 질을 차분하게 챙길 여유가 있었을 리 만무하다.

다른 하나의 이유로 역시 급속했던 산업화 과정을 들 수 있다. 지난 1960년대 초에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로 세계 최하위였던 경제 수준이 지금은 약 200배 증가했다. 그 동안 우리 사회가 돈 안 되는 ‘문화와 삶의 질’에 매진했다면 이런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와 같이 도시화·산업화 과정이 오로지 양적 팽창을 신봉하는 국민의식과 사회적 가치를 유발해서 결국 오늘의 엉성한 도시 모습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주린 배를 일단 채우고 나면 음식의 맛을 찾듯이 양적 팽창은 더 이상 우리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양적 충족보다는 질적 만족이 중요한, 한마디로 문화와 삶의 질이 소중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도시 모습을 놓고 보자면 무조건 크고 높은 것보다는 작아도 개성있고 아름다운 것이 낫다는 것이다. 로마, 빈, 파리가 크고 높아서 좋은 도시가 아니고 하이델베르크, 제네바, 잘츠부르크가 작다고 매력 없는 도시가 아니다. 이들이 높은 평판을 얻는 이유는 이들 도시가 풍기는 전통과 개성과 아름다움의 향취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열악한 도시문화와 삶의 질은 우리 사회, 우리 도시가 직면한 이 시대의 최우선적 개혁 대상이라고 할 만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의식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양적 성장에 대한 끈질긴 욕구를 질적 향상에 대한 열망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국민소득의 증가, 주 40시간 근무제, 민주화·자율화의 진전 등에 수반해 이미 진행 중이긴 하다. 그러나 이것이 신속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선 범국민적 의식 개혁의 수준으로 승화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리의 도시 문화와 삶의 질을 지금의 상태로 이끌어 온 현행 관련제도를 혁파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새로운 의식과 가치 체제를 잣대로 기존의 제도를 재단해 선진적 모습으로 개혁하는 일은 따라서 도시 개혁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여기에 의식 개혁과 제도 개혁에 관련된 모든 주체가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체제 개혁이 더해져야 도시 개혁은 실천적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실은 이렇게 개혁된 상태의 도시가 선진 서구사회의 현재 도시 모습이 아닌가 한다.

◇약력 ▲58세 ▲서울 ▲서울고 ▲서울대 건축학과 ▲독일 뮌헨공과대 건축학부 박사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원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경원대 교무처장 ▲캐나다 토론토대 방문교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현) 국토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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