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대기업의 사회공헌/윤봉섭 산업1부장

윤봉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3.06 14:35

수정 2014.11.06 11:59



삼성이 지난달 8000억원 사회 헌납을 발표했을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반응은 엇갈렸다. 중소기업들은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격려했고 대기업들은 ‘우리도 해야 하나’는 걱정이 앞섰다.

대기업들로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말 ‘이제는 기업들에 우는 소리도 해야겠다’는 발언에 부담을 느끼던 차에 삼성의 발표가 이어지면서 엄청 부담됐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은 쉽지 않다. 사회공헌을 한다 하더라도 몇백억원, 많아야 1000억원 이상을 넘길 수 없는 나머지 기업들로서는 기금을 내건 안내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1000억원을 낸다고 하더라도 삼성의 8000억원에 묻힐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결국 다른 기업들도 총수 사재 출연 등의 사회공헌을 검토는 했지만 이같은 상황 때문에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그 뒤 재계 2위 현대차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소식이 들려오자 대기업들 사이에 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다.

공정위가 이례적으로 현대차에 대해 납품단가 부당인하 혐의와 대리점에 대한 불공정행위 등 두 가지 혐의를 한꺼번에 조사하자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공정위가 삼성에 이어 현대차를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때마침 공정위와 함께 삼성 공격에 나섰던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연합회도 공격 방향을 현대차로 돌려 합동 공격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참여연대는 현대차그룹의 물류회사인 글로비스가 상장되면서 정의선 사장이 1조원에 달하는 상장 차익을 얻었는데 이를 부당 이득이라고 문제 제기를 해놓고 있는 상황이다. 경실련도 현대모비스와 현대자동차간 순정부품 공급과 관련해 전반적인 상황 조사를 벌이는 등 현대차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이쯤 되면 현대차가 ‘지난해 홍역을 치렀던 삼성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도 하다. 반삼성 기류가 8000억원 사회 헌납으로 수그러들면서 정부와 시민단체가 주 타깃을 삼성에서 현대차그룹으로 옮기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현대차 이후에 다음 차례는 어느 그룹이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재계는 현대차를 둘러싼 이같은 심상찮은 기류에 대해 재계 2위 등극 이후 한번쯤은 치러야 하는 관문으로 여기는 등 배경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물론 현대차를 둘러싼 심상찮은 기류는 일차적으로 현대차 경영의 투명성이 아직 완전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룹의 덩치가 커진 만큼 사회적 책임요구 또한 높아지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지난 2월4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국제 경쟁이 하도 심해 상품 1등 하는데만 신경을 썼는데 국내에서 (삼성이) 비대해져 느슨해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 대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삼성은 이회장이 국내에서의 느슨함을 사과한 후 이틀 만에 8000억원의 사회공헌기금 조성을 발표하는 등 국내에서의 사회적 책임을 약속했다. 현대차로서도 사회공헌 압박에 놓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그 동안 삼성 이상으로 국제 경쟁력 제고에 주력해왔다. 그 결과 주력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의 약진에 힘입어 지난해 LG그룹을 제치고 재계 2위로 올라섰다. 지난해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 이어 올해 말 슬로바키아 기아공장을 가동한다. 올해중에는 동유럽지역에 공장 착공이 진행된다. 지난해 고로 설치계획까지 발표하는 등 갈수록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의 경영 환경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환율급락, 고유가로 7년 만에 매출이 감소하는 등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과잉 생산까지 겹치면서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과장 이상 임직원들은 임금 동결을 선언하고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96%에 이르는 부품 국산화율이 오히려 독이 돼 수익성을 위협하고 있다.

물론 공정위의 조사나 시민단체의 주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일부 재계의 주장처럼 기업을 압박, 분배를 실현하고 사회 헌납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즉시 중단돼야 한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 창출에 있다.
따라서 기업의 활동은 이윤 창출을 위한 것이다. 이윤을 창출해야 사회공헌을 할 수 있고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다.


비상경영을 선언한 현대차가 현재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지 못하면 국가 경쟁력 하락은 물론 사회공헌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모두가 관심을 쏟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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