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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책돋보기]얀 마텔의 ‘파이이야기’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3.29 14:40

수정 2014.11.06 08:40



얀 마텔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000년대 초반 유럽의 어느 대학 비교문학부의 수업 계획서에서였다. 다른 일 때문에 그 도시에 잠시 다니러 갔다가 은사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나는 얀 마텔이라는 이름을 보게 되는데 처음 들은 이름은 그리 잘 기억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의 이름을 이제껏 기억한다는게 신기하다.

차분한 중산층 주택가에 자리 잡은 널찍한 단독주택을 독립적인 학과 건물로 사용하였는데 현관에 여러 저러 강연회와 수업 계획서가 붙어 있었다. 유태인 기부자의 이름이 붙여진 한 학기 단위로 이뤄진 세계 저명 작가 초청 강의에 당시로서는 낯선 그의 이름이 있었고, 그의 강의 주제 역시 너무나 낯설게만 다가왔다. ‘서구문학에 나타난 동물들’이라는 주제의 강의가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더구나 그는 당시 아직 채 40세가 되지 않았었다.
얀 마텔이 누구지? 그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라도 된다는 말이야? 그가 이런 특별 강의를 진행할 정도로 저명하단 말인가? 이러한 나의 의구심은 그가 곧 발표한 ‘파이 이야기’(원제 Life of Pi)를 읽으면서 마치 눈 녹듯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얀 마텔은 깊이 1m 남짓, 폭2.4m, 길이 8m의 구명보트에 벵갈산 숫호랑이 한마리와 함께 조난당해서 무려 227일 간 바다를 떠도는 파이라는 소년의 표류기를 인터넷 시대의 오딧세이와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로 탈바꿈 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잡아 먹는 하이에나, 그리고 그 하이에나를 잡아먹은 벵갈 산 호랑이를 마주 대하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조난의 항해에서 반드시 살아서 뭍으로 되돌아 가겠다는 소년 파이의 열정은 오딧세우스의 귀향에 대한 열망에 비견할 만 할것이다.

그리고 마치 오딧세우스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꾀를 생각해 내고 앞으로 이러날 일들에 대해서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그는 망망대해에서 나뭇잎 같은 조각배에 한 마리의 야생 호랑이와 한배를 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동물들에 대한 지식에 기대어 호랑이를 길들이는 계획을 세운다.
싸이런의 노래에 밀납으로 귀를 틀어막아서 대처해 나간 오딧세우스와 같이 파이는 바다라고 하는 보다 거대한 자연의 위력에 굴하지 않고 배안의 호랑이의 발톱을 기지와 용기로써 피해갈수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소년 파이가 구명보트에 비치된 장비들을 ‘점검’하는 것이나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길들이고 그 호랑이의 존재에 비춰 자신의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장면은 마치 로빈슨 크루소를 연상하게 한다.
그럼에도 소설의 에필로그에서 보여지는 이야기들은 파이와 호랑이는 우리 내면의 대립적인 두 자아에 대한 메타퍼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김영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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