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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험난한 EU 에너지 공동정책/안정현 파리통신원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4.06 14:41

수정 2014.11.06 08:07



유럽연합(EU) 역내 에너지시장 자유화 구상이 차질을 빚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EU는 오는 2007년까지 전력과 가스 공급 시장을 완전 자유화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일부 회원국에서 전력 생산업체들간 인수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2월 독일 최대 전력업체인 EON이 스페인 기업 엔데사에 대한 공개 매수를 시도했으나 스페인 정부가 이를 저지했다. 스페인 정부는 자국 에너지산업 관련 기업에 대해 10% 이상의 주식을 매입하는 경우 모든 과정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감독 당국에 줌으로써 사실상 매입을 중지시켰다.

지난달엔 이탈리아 전력업체 에넬이 프랑스 민간 에너지 기업인 수에즈를 인수합병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프랑스 총리가 직접 나섰다.
프랑스가스공사(GDF)와 수에즈의 합병을 주선해 에넬의 합병가능성을 미리 차단한 것이다. 이 조치와 관련해 프랑스 정부는 자국 보호주의라는 혹독한 비판을 주변국들로부터 들어야 했다.

지난 3월24∼25일 EU 정상들이 회원국간 분열을 막고 역내 자유경쟁을 강화하면서 공동 에너지 정책의 틀을 만들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으나 적정 예비전력 확보, 경쟁력, 환경친화를 위한 공동 에너지 정책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큰 틀에만 합의했을 뿐 구체적인 논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번 사태로 에너지시장 개방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25개 회원국들 중 개방 일정이 지연되고 있는 17개 회원국에 서한을 보내 에너지시장 개방과 관련해 질의할 예정이라고 밝히는 등 역내시장 자유화 일정을 차질 없이 추진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EU 에너지시장 개방 계획 전반에 걸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 동안 EU가 추진해 왔던 역내 에너지시장 개방 계획은 대부분 한 개의 국영 기업이 생산에서 분배까지 총괄하고 있는 기존의 독점 구조를 해소하는 데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첫째, 기존의 거대 독점기업은 송전·발전·판매 등 부문별로 쪼개 분사하고 둘째는 기존의 송전망을 모든 공급자들이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파리 9대학의 엘리 코엔 경제학 교수는 EU가 국가별 독점체제를 해소하는 데만 관심을 두고 국가간 전력 송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송전방식의 통일, 국경지역 송전시설 상호연결 등 전 유럽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단일시장 조성에 중요한 관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경시돼 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기존의 국가별 독점구조가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에너지 산업의 특수성에 따른 이유가 있었던 만큼 경쟁원리와 기존의 장점들이 상호 보완될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것도 고려돼야 할 사항이다. 전력 산업의 경우, 경쟁 도입 후 지금까지 유럽의 전기 요금은 낮아지지 않았다. 원인은 전력 기업의 특수성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전력 시장은 다른 산업에 비해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발전 및 송전설비 등은 장기 수급 예측에 따른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투자회수 기간도 길다. 투자자들에겐 매력적인 사업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경쟁이 도입되면 설비투자보다는 기존 시설을 이용해 이윤율 높이기에만 급급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적정 규모의 설비투자를 총괄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었다. 통합된 시장에서도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주체가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EU 집행위 차원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EU 집행위원회도 향후 공동에너지 정책을 담당할 부서가 신설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경쟁을 담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전력 산업의 특성상 조정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고려해야 할 여러 부차적 요인들이 있다.
원자력 발전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의 경우 원자력 기술 유출의 우려 등도 민영화를 꺼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편, 에너지 사용에 대한 과세가 중요한 국가 재원 중에 하나라는 점에서 국가로서는 전력 공급업체들이 기존처럼 국영 또는 국가가 대주주인 형태로 국가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 훨씬 쉬웠던 측면도 있었다.


서비스 시장 자유화 계획 유보, 유럽연합 헌법 부결 등에 이어 공동 에너지정책도 현재로는 쉽게 합의가 도출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 junghyu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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