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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묻지마’ 청약광풍 뜨겁다

신홍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4.09 14:41

수정 2014.11.06 07:59



A건설 홍보실에 근무하는 J과장(37). 얼마 전까지 ‘로또복권’을 사서 맞춰보는 재미로 주말을 기다렸던 그는 최근에는 온통 ‘판교 로또’에 정신이 팔려 있다. 경기 성남 판교에서 아파트를 가장 우선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서울 거주 40세 이상, 10년 이상 무주택자가 아니고 수도권 일반 1순위이기 때문에 당첨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당첨만 되면 ‘대박’이라는 생각에 13일 무조건 청약할 생각이다.

그는 “당장 계약금도 준비가 안됐지만 당첨만 되면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자금을 맞출 계획”이라며 “입주 때 전세로 내놨다가 기회를 봐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성남에 사는 주부 P씨(42)는 얼마 전 남편과 대판 싸웠다. P씨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만큼 임대아파트에 청약하자고 했지만 남편은 다짜고짜 ‘무조건 분양아파트에 청약해야 한다’며 P씨를 바보 취급했기 때문이다.

판교신도시에 ‘묻지마 청약광풍’이 불고 있다.
민간분양아파트는 당첨 확률이 거의 ‘제로’인데도 청약통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너도 나도 판교에 매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판교 청약이 끝난 뒤 있을 후유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판교 아파트 당첨’을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고 있어 어떤 문제로 번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판교 청약에 따른 국가적, 사회적 에너지 낭비는 제쳐두고라도 판교 청약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무주택 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사회적 반감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첨 가능성 거의 ‘제로’, 그래도 ‘청약’

현재 공급중인 판교신도시의 전용 25.7평 이하 중소형 공급물량은 총 9428가구. 수도권 청약대상자가 200만명인 점을 감안할 때 당첨 확률은 수천대 1로 ‘바늘구멍’보다 더 좁다.

청약대상자 중 몇명이 청약할지 예상할 수 없지만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청약예·부금 1순위 가입자가 100% 청약한다고 가정하면 일반 1순위 최고 경쟁률은 2322대 1에 달한다. 또 60%만 청약한다고 해도 경쟁률이 1393대 1에 이른다. 무주택자가 아닌 서울·수도권 일반 1순위는 사실상 당첨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부분의 청약대상자들은 ‘한번 찔러봐야겠다’는 식이다.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에 사는 K씨(33)는 “24평형 아파트를 가지고 있어 사실 당첨 가능성은 없다고 들었다”며 “그래도 모두 청약하는데 나만 빠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번거롭게 현장에 갈 필요도 없이 사무실에서 ‘엔터 키’ 하나만 누르면 되는데 안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사회·경제적 낭비 엄청나

이런 묻지마 청약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막대하다. 인터넷 청약을 위한 전산시스템 구축, 사이버 모델하우스 구축 및 개관, 현장 접수를 위한 수많은 인력 및 상담원 배치 등 눈에 보이는 비용과 눈에 보이지 않는 청약자들의 시간·노력 비용까지 합하면 상상을 초월할 것이란 분석이다.

주공의 경우 인터넷 청약을 위한 접속 용량을 10배 이상 늘리는 등 상당한 비용을 들여 전산시스템을 구축했고 상담직원도 50명까지 확보해 주야로 상담중이다. 지난달 29일 청약접수 첫날 현장접수 장소인 분당 탄천종합운동장에 경기지역본부 관계자들이 대거 차출돼 접수를 받기도 했다.

국민은행 역시 판교 청약에 대비해 콜센터, 휴대폰 문자메시지, e메일, 일선지점 창구 등을 통해 인터넷뱅킹 가입을 집중적으로 권유했고 시간당 10만명의 청약 처리가 가능한 전산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민간아파트 청약 첫날인 지난 3일에는 해당 건설업체에서 총 200명의 본사 직원을 수도권 지점에 배치하기도 했다. 혹여 전산시스템에 문제라도 발생하면 그 비용은 천문학적인 숫자로 불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사상 최대의 청약인원이 몰릴 것에 대비해 국가적 차원에서 준비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든 경비가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에다 국민들이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 등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비용은 수조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판교=대박’ 환상도 문제

판교 청약 광풍이 지나가고 난 뒤 국민들이 겪을 후유증도 문제다.
‘묻지마 청약’의 가장 큰 원인은 ‘판교=대박’이라는 등식 때문이다. 일반 시민들의 허탈감은 제쳐두고라도 탈락한 무주택 서민들이 겪을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적 반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천 주안동 황원준 신경정신과 원장은 “판교 당첨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떨어졌을 때 심리적 공황상태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며 너무 집착하지 말 것을 권했다.

/ shin@fnnews.com 신홍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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