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일기예보와 교육정책/노동일 경희대 법대교수·시사평론가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8.07 04:27

수정 2014.11.06 01:33



“우리나라에서 믿지 말아야 할 게 두 가지 있대요. 하나는 일기예보, 또 하나는 교육정책이래요.”

‘외고 지역제한’ 정책이 처음 발표됐을 때였다. 이는 전국 외국어고의 신입생을 해당 학교가 위치한 광역자치단체 출신 중학생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외고 지역제한을 둘러싼 여론의 논란은 정책의 타당성 여부보다 교육부의 일방적이고 갑작스런 정책 변경에 있었다.

2008학년도 시행을 공언하고 나선 교육부 방침대로라면 당장 현재 중학교 2학년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외고 진학을 준비 중인 학생들에 대한 형평성 문제 등 여론수렴 부족을 지적하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외국어고의 폐해’를 지적하는 당시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표정은 요지부동이었다.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둘째에게 ‘학생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물론 속내로는 ‘외고’에 관심을 가져볼 것을 부추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기예보와 교육정책을 동일시하는 다소 황당한 대답 앞에 진지한 반응을 기대했던 아빠는 오히려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듯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교육부에서 새로운 발표를 할 때마다 우리들끼리 얘기해요. ‘이번에는 또 언제 바뀔지 어떻게 알겠어?’라고요.”

교육계에 몸담은 터에 우리 교육에 대해 정도 이상의 냉소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철없어 보이는 아이들조차 극도의 불신을 갖고 있는 게 우리 교육현실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는 취임도 하기 전 청문회 석상에서 외고 지역제한 정책 시행을 2010학년도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교육정책이 일기예보보다 더 조변석개한다는 아이들의 조롱에 근거를 하나 더 보태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의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교육의 비결은 학생들을 존중하는데 있다”고 했다. 교육대상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의를 얻지 않고는 아무리 고상한 가르침도, 훌륭한 정책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가 실험용 마루타냐’는 말을 공공연히 입에 올리는 학생들을 상대로 어떤 교육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육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 평행선을 달리는 만큼 교육정책의 실패 원인에 대한 진단 역시 백인백색일 것이다. ‘온 국민이 교육전문가’인 마당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분석을 제시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만 원인을 꼽으라면 그동안 너무 많은 사공이 너무 많은 ‘교육개혁’을 추진해왔다는 사실을 들고 싶다. 정부수립 후 58년 동안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부터 김진표 부총리까지 교육부 수장은 무려 48명, 평균 재임기간은 1년4개월이었다. 교육부장관만은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하도록 하겠다던 참여정부 들어 벌써 6번째 장관을 물색 중이다.

단순히 임기가 짧다는 사실이 교육정책의 불신을 초래한 근본적인 이유는 되지 않는다. 문제는 취임하는 장관마다 ‘백년대계’를 도모하기는커녕 전임자와 차별되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한데 있다. 개혁의 과잉이 교육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재임 13일 기록을 세운 김병준 전임 부총리는 자신을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 매일 한 가지씩 새로운 교육개혁 비전을 내놓겠다고 의욕을 보인 바 있다. 전임 교육부 장관 48명이 미처 못다한 교육개혁의 과제가 그리도 많다는 말인가.

벌써부터 대학입시와 관련, 수시입학 제도를 고치고 실업계 고교 출신 특례입학 비율을 조정하는 등의 ‘개혁과제’가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다. 손쉬운 ‘개혁’을 위해 주로 입시정책을 손질하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인 말이지만 새 교육부총리는 차라리 교육에 관해 아무런 개혁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게 필요해 보인다.

한 나라의 교육부총리라면 전체적인 교육비전을 제시하고 학생을 비롯한 교육당사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가장 역점을 두라는 말이다.
국지적인 호우까지 예측하다 못해 심지어 간섭하려 애를 쓰다가 신뢰만 잃어버리는 우를 더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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