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올해의 인물 변양호/곽인찬 논설위원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12.26 17:51

수정 2014.11.04 14:47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지(誌)는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뽑았다는 데 한국에서 올해의 인물은 과연 누가 좋을까. 전 국민을 상대로 진실게임을 벌였던 황우석 박사, ‘대한민국’ 이름 넉자를 만방에 떨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10대 돌풍을 일으킨 앙팡 테리블 박태환·김연아, ‘왕의 남자’로 신드롬을 일으킨 이준기, 혹은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붙박이 4번 이승엽? 모두 자격을 갖춘 후보들이다.

한 명 더 있다. 노무현 대통령. 최근 70분에 걸친 ‘작심 발언’으로 다시 한번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지난 4년 간 간헐적으로 비치던 본심을 원고지 100장 남짓 분량으로 집대성했다. 경제에 관한 언급이 빠진 게 좀 아쉽지만 이 정도면 노무현 어록 완결판이라 할 만하다. 시기적으로도 마침 연말에 나왔기 때문에 올해의 인물 후보군에서 단연 돋보인다.


盧대통령은 아깝지만 탈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 대통령을 올해의 인물로 뽑지 않을 생각이다. 노 대통령의 지난 1년 간 행적이 올해의 인물감으로 모자라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노 대통령보다 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이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내가 의중에 둔 인물은 역대 재정경제부 국장 가운데 사상 최강이다. 얼마나 힘이 센지 그가 외환은행 매각이라는 중대 사안을 주무르는 동안 그의 상사들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당시 재경부의 차관·장관, 금융감독원의 부원장·원장은 허수아비로 드러났다. 청와대도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

슈퍼맨 같은 그의 활약상에 놀란 나머지 검찰은 그를 서둘러 불구속 기소했다. 아예 구속할 작정이었으나 법원과 영장을 놓고 티격태격하느라 불구속으로 만족해야 했다. 반면 당시 결재라인에 있던 김진표 재경부 장관, 김광림 차관, 이정재 금감위원장, 이동걸 부위원장 등 고위급 9명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가 누구인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할 때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으로 있던 변양호가 바로 그 사람이다. 2003년 7월 문제의 ‘10인 회동’ 역시 모두 그가 주도한 일로 드러났다. 이강원 외환은행장은 헐값 매각 드라마의 조연이었다. 변 국장의 진두지휘 아래 외환은행은 ‘먹튀’ 투기자본 론스타에 팔렸고 이후 국민은행에 재매각키로 했다가 검찰 수사에 발목이 잡혀 계약 자체가 파기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변양호란 인물을 시시콜콜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실 장관감으로 꼽히던 유능한 관료가 갑자기 사표를 내고 보고펀드라는 토종 사모펀드의 대표로 취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소 실망했다. 변 국장 같은 이는 사기업, 그것도 돈의 논리에 가장 충실한 사모펀드보다는 정부에서 일하는 게 국익에 더 보탬이 될 텐데, 아쉬워 했던 기억도 난다.

다들 꽁무니 뺄때 책임 떠맡아
주목할 것은 그가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썼다는 점이다. 짐작건대 그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책임을 윗선으로 미루지 않았던 모양이다. 검찰이 찾아낸 또 다른 중량급 ‘공범’은 이강원 행장이 유일하다. 깃털처럼 가벼운 결론이다. 재경부 국장과 은행장 두 사람이 1년 내내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헐값 매각의 주범이라니….

이러니 정부 조직 안에서 윗선에 대한 투덜거림이 나오는 거다. 욕 먹을 각오하고 소신껏 일을 처리했더니 책임도 다 뒤집어써라? 잘 되면 제 탓, 안 되면 부하 탓인가.

공무원들이 본받아야 할 인물로 나는 감히 변양호를 꼽는다. 그가 책임감의 화신으로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뜻에서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다.
그는 네 탓 손가락질이 횡행하는 우리 시대의 추세적 흐름을 홀로 거스르는 흔치 않은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등 뒤에 숨어 있는 예전의 상사들에게 당부한다.
곧 재판이 시작될 테니 부디 변호사 비용이라도 추렴해 보태주기 바란다.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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