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석칼럼] 시장,선의,정의감/방원석 논설실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2.27 17:25

수정 2014.11.13 15:47



서울 시내에 버스 중앙차로제가 도입될 때만 해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하지만 버스 중앙차로제는 시행 초기의 우려를 씻고 성공적으로 정착됐다. 버스 중앙차로제는 지하철 못지않게 빠르고 지하철이나 다른 시내버스와도 무료 환승이 가능해 시민들로서는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 물론 버스 정류장이 옮겨가 가판대 상인이나 노점상들이 장사가 예전만 못하다고 울상이고 영업용 택시나 자가용 운전자들은 도로가 더 막혀 분통을 떠트리고 있다.

버스 중앙차로제는 손해보는 시민들도 있지만 대다수 시민들이 더 편리해지고 이익을 보고 있어 공감하는 정책이다.
버스 개혁은 버스를 이용하는 고객인 시민들이 과거에 무엇이 불편했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장의 욕구와 특성을 철저히 따지고 분석해 추진된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사심이 끼어들지 않았다.

선의나 정의감은 무모

이와 달리 선의나 정의감으로 시작한 정책이나 법은 사정이 다르다. 때로는 무모하고 위험할 수 있다. 취지가 좋아도 시장을 거스르는 경우가 많아 당초 의도를 벗어나고 결과도 엉뚱해진다.

국회 통과를 앞둔 이자제한법이나 7월 시행을 앞둔 비정규직 보호법안은 선의에 기댄 대표적인 정책들이다. 취지야 나무랄 데가 없지만 부작용이 걱정스럽다. 이자제한법은 영세민들을 악덕 사채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백 없고 돈 없는 영세민들이 오히려 돈을 빌리기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자녀 학자금이나 가족의 병원비조차 조달하기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비정규직 보호법안도 마찬가지다. 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비정규직들이 대거 해고될 수 있는 것이다.

정의감은 선의보다 더 두려운 결과를 가져온다. 정의감은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을 먹고 산다. 정치적인 사심이 들어있는 경제정책에서는 분배의 정의가 강자의 이익이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장의 활력은 떨어지고 취약층이 더 어려워진다. 남미 국가들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애당초 서울 강남 집값을 겨냥했던 부동산 대책이 그 짝이다. 소수가 어려워지더라도 다수의 환심을 사면 그뿐이라는 포퓰리즘,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러서라도 특정 지역의 집값을 잡겠다는 정의감이 알게 모르게 부동산 대책에 끼어들었다. 이는 분명 시장의 욕구를 벗어나고 원리에도 어긋난 것이다.

이른바 버블세븐 집값을 잡으려고 수십차례 쏟아낸 정책들이 얼마 안가 맥을 못추고 전셋값 폭등, 수도권 집값 폭등으로 이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수를 겨냥했지만 다수의 희생자를 양산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시장의 보복 때문이다.

시장 욕구 철저히 따져야

현행 부동산정책은 시장의 욕구와는 거꾸로 갔다. 한번이라도 도심재건축을 풀어 공급을 늘리고 세제를 손질해 시장의 필요에 순응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수도권의 집값 폭등이란 최악의 상황은 피했을지 모른다. 지금도 국민이 부동산정책을 극도로 불신하고 있다. 이는 아직도 정부 개입이 지나치고 시장 기능이 상실됐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정책의 실패가 시장의 실패로 이어지고 국민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이제 정의감이나 선의를 앞세운 정책이 반드시 국민을 위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어떻게 하면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까.’ 고통스럽겠지만 이것은 정의감이나 선의가 아니라 시장이 해결하도록해야 한다.

/wsba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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