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남아 죄스러웠습니다, 앞으로도 평생전우를 기리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한국전쟁에 함께 참전한 중대원 160명 가운데 혼자 살아남은 70대 할아버지가 숨진 전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자비로 추모관을 짓고 24년째 추모제를 올리고 있어 감동을 주고 있다.
6·25전쟁 당시 육군 백골부대의 진백골연대 6중대 소속이었던 예비역 중사 최수용(79·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화산리)씨가 그 주인공이다.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최씨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해 8월 울산에서 입대해 진백골연대 6중대에 배치됐고 4개월여 뒤인 12월1일 국군의 북진 대열에 참여해 함경북도 부령까지 진격했다.
최씨는 그러나 북진 과정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왼쪽 다리에 수류탄 파편상을 입고 치료를 위해 작전에서 하루 제외됐다.
최씨는 다음날 6중대에 복귀하려 했지만 당시 작전과정에서 무전이 끊긴 부대의 행방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다른 부대로 편성됐다. 그러나 당시 중공군이 물밀 듯 몰려와 한국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최씨는 두 달여 뒤 같은 연대원으로부터 자신이 속했던 6중대가 함경북도 부령 인근 성막에서 인민군에게 포위돼 160명 중대원이 모두 전사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접했다. 중대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최씨는 휴전 뒤 1959년 중사로 전역했고 생계를 위해 노점상과 트럭운전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하지만 부상을 당해 후송된 자신만 목숨을 건지고 동료 중대원은 모두 숨진 한국전쟁 당시를 쉽게 잊을 수 없었고 되레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최씨는 1983년 입대 동기가 많았던 울산을 찾아와 그동안 막일로 모았던 자비로 울주군 온산읍 화산리에 백골부대 진백골연대 6중대 추모관과 자신의 집을 마련했고 20평가량의 허름한 추모관에는 당시 6중대 중대장이었던 이원계 소령의 영정을 포함, 동료 전우 160명을 모신 위패를 마련했다.
추모관이 마련되자 최씨는 매일 제를 올리며 전우들의 넋을 기렸고 매년 6월이면 조촐한 추모제를 올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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