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신혼가구에 보금자리주택을 우선공급하는 방안을 놓고 정부가 딜레마에 빠졌다. 신혼가구의 주거안정과 출산 장려라는 취지는 좋지만 임신사실 증명과 당첨 후 유산 또는 낙태 시 자격의 박탈 여부 등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일 국토해양부 등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임신한 신혼가구에 보금자리주택 우선 청약기회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해당 부처인 국토부는 관련 내용의 법제화를 추진 중이지만 어려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표정이다.
우선 임신의 증명 여부다. 현재 신혼부부에게 우선 청약기회를 주는 우선 공급물량은 ‘결혼 5년 이내에 자녀가 있는 가구주’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임신 신혼가구에 확대 적용할 경우 ‘결혼 5년 이내 임신 또는 자녀가 있는 가구주’로 법 문구를 수정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구체적으로 임신기간으로 인정할 기간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국토부 관계자는 “유산 가능성이 높은 임신 초기를 인정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유산확률이 떨어지는 수개월 후부터 임신기간으로 정하기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또 자녀의 존재 여부는 주민등록등본 등 공증된 서류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지만 임신여부는 현재 공증할 수 있는 서류가 없다. 따라서 국토부는 병원으로부터 임신증명서 등을 발급받아 제출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구체적으로 임신을 확인해 줄 의료기관의 범위와 증빙서류를 정하는 것도 고민이다. 자칫 절차나 방법이 까다로울 경우 예비 청약자들로부터 비난을 살 수 있어서다.
아울러 의료기관으로부터 임신확인서를 제출받아 청약해 당첨된 뒤 유산되거나 또는 고의로 낙태를 했을 경우 당첨권의 박탈여부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유산된 부부에게 주택입주 자격까지 박탈할 경우 정서상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택을 우선 공급받은 뒤 고의로 낙태를 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다른 이유로 낙태를 했을 경우 유산과 낙태를 명확히 구분하기 쉽지도 않은 형편이다.
이와 함께 국토부 입장에서는 몇 개월 후 출산을 하면 특별공급권이 부여되는 데 굳이 몇 개월 앞당겨 임신 신혼가구에 우선청약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부담이다.
국토부 관계자도 “보금자리주택이 수요보다 공급이 많을 경우 수혜자를 확대하는 게 좋겠지만 공급이 모자라는 데 특별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임신 신혼가구에 대한 주택 우선공급제도가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한데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임신 후 몇 달만 지나면 출산을 통해 우선공급 자격이 부여되는 데 복잡한 절차에다 부작용마저 우려되는 제도를 또 추가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victoria@fnnews.com 이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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