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들었네” 주문 제작 뮤지컬이 뜬다

▲ 다음 달 18일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홍길동'은 전남 장성군과 서울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합작한 작품이다.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성민이 극중 홍길동 의상을 착용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올해 초연을 앞둔 창작 뮤지컬은 모두 27편. 이 중 23편은 민간 제작사가 만드는 상업 뮤지컬, 나머지 4편은 ‘주문 제작 뮤지컬’이다.

주문 제작 뮤지컬은 특정 단체가 뚜렷한 목적을 갖고 만드는 작품을 뜻한다.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것이란 의미에서 ‘관제 뮤지컬’로도 불리지만 어감이 좋지 않고 주도 집단도 다양화돼 ‘주문 제작 뮤지컬’로 통칭한다.

■단순 홍보에서 상업적 성공 도약

주문 제작 뮤지컬을 만드는 이유는 지역을 알려 관광객을 끌기 위해,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기 위해, 혹은 특정 인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등 다양하다.

주제가 이렇다 보니 일반 관객에게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경기도 제작)처럼 2006년 초연 후 매년 무대에 오르는 것은 매우 드문 성공 사례였다.

이런 편견을 깬 것은 지난해 초연한 뮤지컬 ‘영웅’이다. 작품의 시작은 안중근 기념 사업회의 제안이었지만 대형 뮤지컬 ‘명성황후’의 제작사가 류정한, 정성화 등 최고의 배우와 스태프를 동원해 명작을 만들어 냈다.

평단과 언론의 호평은 물론 관객의 극찬도 이어졌다. ‘영웅’은 오는 9월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재공연을 한 뒤 내후년 여름께 미국과 일본 투어를 할 계획이다.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의 예성이 출연한 뮤지컬 ‘남한산성’도 10월 서울 홍인동 충무아트홀 무대에 다시 선다. 경기도 성남시와 성남아트센터가 만든 이 작품은 김훈의 인기 소설이 원작이다.

제작진은 “흔히 말하는 ‘대박’까지는 아니었지만 공연장 위치 등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라고 자평하며 “수정과 보완을 통해 공연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무대에 오르는 작품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서울시가 ‘서울을 대표하는 뮤지컬을 만들겠다’며 제작에 착수한 ‘뒷골목 중매쟁이(가제)’다. 11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 예정인 이 작품은 종로 뒷길의 작은 골목을 배경으로 사라져 가는 서울 풍경을 재현할 계획이다.

다음 달 18일 서울 방이동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홍길동’은 전남 장성군과 서울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함께 만든다. 민중 영웅의 이야기를 오케스트라와 국악을 혼용해 들려줄 계획인데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예성과 성민이 주인공으로 낙점된 상태다.

6·25 발발 60주년을 맞아 국방부와 뮤지컬협회, 국립극장이 공동 제작한 ‘생명의 항해’는 8월 국립극장에서 초연된다. 전쟁 당시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흥남철수작전’이 소재다.

‘난타’로 유명한 PMC프러덕션은 경북 안동시와 함께 안동 탈춤 퍼포먼스를 준비 중이다. 9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아티움에서 첫선을 보일 이 작품에는 흥행 제조기 이지나 연출자와 이지혜 작곡가가 참여한다.

■창작의 고통보다 큰 ‘각색의 고통’

주문 제작 뮤지컬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적인 재정 기반이다. 예산 집행 시 거쳐야 하는 세세한 절차를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전긍긍하며 돈을 구해야 하는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막상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몇 가지 고충을 겪는다. 일례로 서울시뮤지컬단은 가족극 ‘달려라 하니’를 제작할 때 서울시로부터 “서울의 야경과 한강을 무대에 표현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유희성 단장은 “서울이 너무 부각되면 가족애가 희석된다고 생각해 작품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뮤지컬 ‘남한산성’ 역시 제작 초반 ‘성남에 거주하는 배우들을 일부 캐스팅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작품의 뼈대를 세워야 하는 작가들의 고민은 더하다. 뮤지컬 ‘영웅’의 한아름 작가는 “특정 인물을 다룬다는 것이 정말 위험하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위인 안중근의 삶은 이미 전기를 통해 나와 있어 대사 한 줄 쓰는 것조차 부담되고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또 “극적인 효과를 위해 몇몇 가상의 인물을 삽입하긴 했지만 이 캐릭터들이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갔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좀 남는다”고 털어놓았다.

뮤지컬 ‘남한산성’의 각색을 맡은 고선웅 작가도 비슷한 고충을 겪었다. 원작자가 ‘마음껏 바꾸어 보라’며 길을 터 줬지만 창의성을 발휘하긴 힘들었다. 그는 “평소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드는데 뮤지컬은 뮤지컬대로 어법이 있었던 데다 주제 의식까지 확고하다 보니 어려운 면이 많았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주문 제작 뮤지컬 성공의 요건

지금도 많은 지자체들은 제각각의 목적을 위해 뮤지컬 제작에 욕심을 낸다.
고 작가는 “공무원들이 일방적으로 작품의 주제를 정해 홍보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면서 “작품을 만들고 검증을 받는 과정까지 최소한 2년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희성 단장 역시 “짧은 제작 기간은 ‘주문 제작형 뮤지컬’이 갖는 큰 단점”이라면서 “제작진과 배우들의 성향을 일일이 파악해 궁합이 맞는 이들로 팀을 구성하는 게 성공의 제1요건”이라고 조언했다.

또 “공들여 만든 작품이 1회성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관객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주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