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박현주가 만난 아트人] (36) 국내 1호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

박현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11.18 18:20

수정 2010.11.18 18:20

▲ 국내 1호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이 ‘열정의 에너지’라는 타이틀로 18일 서울 삼청동 fnart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관람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석 화백이 경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작품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사진=박범준기자

2초.3초. 일필휘지, 붓이 휘리릭 지나가자 화폭이 갑자기 생기를 띤다. 휘갈기듯 온 몸으로 기교없이 쏟아낸 열정, 눈 한번 깜박이는 순간,절망은 희망이 됐다.

국내 1호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55). 그를 만나면 힘이 솟는다. 사람들 마음속에 수많은 바위고개를 넘게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쇼도 석화백을 만났더라면 인생이 더 달라졌을지 모를일이다.

석화백을 작업실이자 자택인 서울 대방동 아파트에서 만났다. 만나면 악수부터 하는 습관은 쭈볏해졌다. 그가 몸을 움직여 내민 갈고리는 조금 올라오다 수줍게 내려졌다. 어색함도 잠시,그는 발가락으로 앉으라고 인사했다. 주황색 매니큐어가 칠해진 엄지발가락에 시선이 멈추자 “멋 부린 것”이라며 허허 웃었다. 발가락도 두개가 없다.

석화백은 “후크선장’에서 최근에 ‘후크팬’(후크선장과 피터팬의 줄임말)으로 별명이 변했는데 후크팬이 좋다”며 아이같은 웃음을 보였다. 무서움과 순수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남자, 석화백은 양팔이 없다. 그래도 “불편할게 전혀 없다”며 거짓말같은 참말을 쏟아냈다.

“저 사람, 저 몸을 하고 그림까지 그리다니 대단하다. 처음엔 이렇게 말하는 듯한 시선을 느꼈죠. 하지만 이젠 그런 것에 개의치않아요. 지금도 그래요. 의수로 그림을 그린다고 대단하다고 하는데 대단할게 하나도 없어요. 내가 할수 있는 거니까 재미있게 할 뿐이죠.”

편견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 찻잔을 앞에두고 커피를 마시면서 그를 쳐다봤다. 석화백이 차를 마셨다. 입을 대고 마시는 차, 발로 내민 팜플릿,그는 당당했다.

“왜 하필이면 스포츠를 그리냐고 하는데 제가 원래 운동을 좋아했어요.팔이 없어서 일까요. 활동에 대한 욕구가 나도 모르게 화폭에 발산되는 것 같기도 하고, 스포츠 그림은 나 자신에 대한 치유과정이라고도 볼수 있지요.”

석화백은 지난 4월 ‘2010 제2회 국제누드드로잉 아트페어’에서 ‘빙판의 여왕’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너츠’를 그려내 화제가 됐고, 지난 10월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 방청객과 시청자들에게 또한번 감동을 선사했다.

갈고리에 붓을 끼고 순식간에 그려내는 그림은 ‘수묵 크로키’. 동양화의 멋스러움과 서양화의 크로키를 접목해 탄생된 세계 어디에도 없는 석화백의 독창적인 화풍이다.

그의 호는 ‘성엣장’.유빙(流氷). 물에 떠가는 얼음처럼, 자연스럽게 녹아 사라지는 존재가 되겠다는 뜻으로 직접 지은 호라고 했다.

▲ 석창우.29th-Cycling1.70X70cm.2010

■2만2900볼트에 감전…화가로 변신

화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다. 공고를 나와 ‘전기밥’을 먹던 그는 ‘미술의 미’자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낚시를 떠나 고기를 잡는 일이 인생의 낙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기업 전기시설을 점검하다가 2만2900볼트에 감전됐다. 1984년 10월 29일 오후 12시 30분. 발가락 2개를 잘랐고 타버린 두팔은 어깨죽지부터 잘랐다.나이 29세. 1년반을 병원에서 죽은듯이 살았다.

“연금도 나오고 아직 젊은데 뭘 못하겠냐”고 아버지한테 큰소리쳤다. 낚시를 못한다는 아쉬움 빼고는 크게 절망도 하지 않았다. “처음 의수를 달았을때 엄청 좋았어요. 이걸 하게 되면 낚시를 할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웬걸요. 갈고리를 달았는데 낚시는 커녕 움직일수도 없고, 아무것도 할수가 없더라고요.”

갈고리 모양의 의수를 끼고 생활하던 그가 붓을 잡은 것은 아들 때문. 4살짜리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는데 “못할 것도 없지” 하는 생각에 갈고리에 볼펜을 끼고 그렸다. 틈실한 날개죽지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독수리였다. 주변에서 잘 그렸다며 “그림 한번 그려보지?”하는 칭찬에 난생 처음 그림을 그려볼 생각을 했다. 화실문을 두드렸지만 양팔이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그러다 우연히 전주에 있는 서예가 여태명선생의 서예화실에 인연이 닿았고 글씨쓰는 법을 배웠다.

“붓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입으로 하고 발로 하는 다른 장애미술가들과는 다르게 하고싶어서 의수로 해보자 한 욕심이 컸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요.”

붓이 동그래서 갈고리에 맞지 않았던 것. 지금은 의수가 붓을 잡아서 그리지만, 처음엔 붓대에 구멍을 뚫어서 끼워 고정 시켜 글씨를 썼다. 붓이 바닥에 떨어져 도망가고,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발로 먹을 갈았고, 물집이 터졌다. 그래도 갈았다. 하루종일 쓰고, 또 썼다. 터진물집이 자리를 잡고 마치 마치 피토하고 득음하듯이 남들이 손으로 가는 것처럼 발로 먹가는 일은 식은죽먹기가 됐다.

▲ 석창우.29th-cycling.70x70.2010

■밥먹는 시간빼고 붓질 ‘수묵크로키’ 탄생

사군자, 전각, 스승의 옆에서 보고 따라하고 쓰기를 10년간 반복했다. 밥먹은 시간 빼고 그림을 그렸다. 붓의 놀림이 자유로워졌을때 여체의 움직임에 매료되어 누드크로키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연필이나 펜 목탄으로 크로키를 그릴때. 석창우화백은 가장 자신있는 붓을 사용했다. 서예와 크로키를 응용해 ‘수묵 크로키’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먹과 서예의 접목. 누드크로키를 할 당시 붓으로 누드크로키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붓으로 하는 사람이 있어도 바깥테두리를 그리는 형태로 할뿐. 석화백은 익숙해진 붓을 사용 일필휘지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드크로키는 서양에서 왔지만 우리나라 것으로 접목시켜보자 싶어서 먹하고 서예질감을 넣어서 한국화한 것입니다.”

연필을 갈고리에 끼우고 연습하기를 6,7년. 자유로워진 연필을 버리고 붓을 끼웠다.고기가 물만나것처럼 펄떡였다.1991년 전라북도 서예대전에 입상했다. 5년 안에 남보다 잘 그리겠다고 했던 다짐을 3년 만에 이루었다. 1997년 포스코미술관에서 자연과 추상이란 5인의 전시에 초대됐다. 이후 서울서예공모대전에서 잇따라 수상하면서 그리기에 자신감이 붙었고 드디어 98년 화랑에서 초대전이 시작됐다.개인전 28회, 그룹전은 수백회가 넘는다.형태만으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필력, 몸짓은 물론 느낌까지 담아낸 누드와 역동적인 힘이 생생한 수묵크로키는 주목 받기 시작했다.

장애인으로 예술활동을 하는 것은 수많은 편견과 싸움이다. 작품보다 움직임에 신기함과 감탄을 보내지만 석화백은 이미 장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타인의 시선보다, “내가 해냈다”는 내안의 환희, 희열을 느끼며 오늘도 붓을 들어 집중한다.

“장애가 있다고해서 그것만 생각하면 절대로 발전을 못합니다. 결국 극복대상은 본인이죠.물론 장애인작가들이 일반 사람들보다 힘들게 서너배는 힘들게 하고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게 되면 똑같아져요. 오히려 똑같아졌을때는 그 사람들보다 낫다는 거죠. 그건 자신이 즐겨 작업하고 동화하면서 노력을 해야돼죠. 남이 해주는게 아니니까요.”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뭘하든지 즐기면서 한다”는 그는 “이제 누가 팔을 준다고 해도 거절할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열정도 재능이다. 좋아서 하는 일은 하늘과 땅만큼 결과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예술은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내가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태에서 생활이 됐지요.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해외에서 많은 전시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석화백의 제 29회 개인전이 서울 삼청동 fnart 스페이스에서 18일부터 열리고 있다. 스포츠 현장의 생중계를 마주한 것 처럼 박진감 넘치는 작품을 선보인다.
1년동안 경륜장에서 남들이 환호할때 2초, 3초, 붓으로 온몸의 자유를 담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지나치는 경륜선수들, 볼 하나를 가운데에 놓고 치열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축구선수의 땀냄새까지 훅 지나간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은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운동선수들처럼 현실적인 장벽을 스스로 극복해낸 석창우화백의 열정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겼다.전시는 28일까지.(02)725-7114.

/hyun@fnnews.com 박현주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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