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 ‘망령’..185㎝에 75㎏, 1등급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1.11.08 17:57

수정 2011.11.08 17:57


한동안 잠잠하던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번에는 직업과 학벌, 재산, 외모 등 좀 더 구체적이다. 일부 결혼정보회사는 이 등급표 부문별로 점수를 매긴 뒤 합산, 고객을 분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결혼정보 회사들이 '인륜지대사'로 여기는 결혼을 등급별로 상품화해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결혼정보회사들은 그동안 '등급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 왔지만 파이낸셜뉴스가 8일 확보한 모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에는 직업, 학벌, 외모 등 각종 점수를 합산한 점수별로 상품군을 지정한 다음 고객 등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상품을 권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키 185㎝, 몸무게 75㎏, 대머리이거나 보기 심한 흉터가 없고 집안 재산이 100억원 이상인 서울대 법대 출신 남성 판사는 등급은 A+로 최상위급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반면 키 166㎝, 몸무게 73㎏, 머리가 약간 벗겨졌고 집안도 넉넉하지 않은 2년제 대학을 졸업한 중소기업 직원이라면 등급은 D가 된다. 이 남성이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

고객 구분은 결혼정보회사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학력이나 직업 등을 가지고 있는 고객은 특별 대접한다고 공공연히 홍보하는 결혼정보회사도 있다.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회원의 스펙이나 환경이 천차만별이라서 등급표대로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몇몇 커플매니저들은 아직도 고객들을 매칭시키는 데 참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다른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등급표대로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입시킬 수 있는 남성은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등급표를 만들거나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되살아난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 ‘망령’

8일 등급표에 따르면 우선 직업분류는 지난해 드러난 등급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성의 경우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는 1등급,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와 서울대 행정고시 합격자, 비서울대 포함해 이른바 5대 로펌 변호사는 2등급이다.

같은 판검사라도 비서울대라면 3등급으로 매겨진다.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와 같은 등급이다. 해외파 축구 및 야구 스타는 5등급에 위치해 있다. 서울·연세·고려대 외국계 대기업 입사자나 금융권 공기업 입사자도 5등급이다.

최고경영자(CEO)라도 직원을 몇 명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급이 달랐다. 300명 이상 기업 CEO는 4등급, 100명 이상 기업 CEO는 7등급, 10명 이상 기업 CEO는 9등급이라는 것이다. 초·중·고 교사, 단순 대기업 입사자, 공무원 9급 합격자는 하위권이었다. 전체 15등급 가운데 2년제 대학 출신 남성의 등급은 가장 아래에 있었다.

등급표는 1등급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에게 100점을 주고 그 아래 등급부터 3점씩 차감하는 방식으로 순위를 정했다. 2등급인 서울대 법대 출신 검사 97점, 3등급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 94점 등의 계산법이다.

직업과 출신학교를 한 번에 묶어 놓고도 학부 졸업학력은 따로 분류했다.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미국 명문대는 1등급(80점 만점), 연세대, 고려대, 미국 100위권 대학교 2등급(77점), 기타 서울·수도권 4년제 7등급(62점), 지방 4년제 9등급(56점), 2년제 대학 10등급(53) 등이다.

재산은 부모와 본인 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부동산, 주식, 현금 등을 모두 포함시켜 무조건 많으면 후한 점수를 줬다. 100억원 이상은 1등급(100점 만점), 60∼100억원 2등급(95점), 10∼20억원 7등급(70점), 3∼5억원 9등급(60점), 3억원 이하(55점) 등으로 적혀 있다.

등급표는 외모에 대해서도 기록해 놓고 있다. 키 185㎝ 이상에 몸무게 75㎏이면 1등급(60점 만점)이었고 키와 몸무게가 각각 2㎝, 2㎏ 줄어들 때마다 등급(-2점)이 한 계단씩 하락했다.

키는 189㎝ 이하, 168㎝까지가 용납할 수 있는 한계였다. 190㎝ 이상이나 167㎝ 미만은 2㎝당 점수를 2점이 아니라 5점씩 감산했고 몸무게는 5㎏마다 역시 5점씩 뺐다.


하지만 이 같은 등급을 받으려면 얼굴과 몸매가 당연히 '무난하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만약 선호하는 외모가 아니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대머리는 -10점, 보기심한 흉터는 -5점 등으로 셈을 했다.

결혼정보회사는 이 같은 각 항목별로 고객의 점수를 채점한 뒤 340점 만점에 315점 이상이면 A+, 290∼314점 A, 265∼289점 B+, 240∼264점 B, 215점∼239점 C, 188∼214점 D 등과 같은 평점을 매겼다.

점수에 따라 서비스도 차이가 있었다. A+는 보험서비스, 팀장급 매칭매니저를 통한 비공개 1대 1 맞춤 매칭, 횟수 제한 없는 미팅, 연애코치, 최상위 파티 참석 등이 뒤따른다. 점수가 낮아질 때마다 담당 매칭 매니저 경력이 짧거나 파티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최하위의 미팅 횟수는 월 1차례였다.

점수가 높아서 비슷한 스펙의 상대방을 찾으려면 그만큼 비용도 필요했다. 업체마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최상위급 800만∼1000만원, 2위급 360만∼700만원, 3위급 240만∼500만원, 4위급 155만∼350만원, 5위급 115만∼120만원, 일반 98만∼99만원 등의 수준이었다.

여성의 경우 지난해 공개됐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부모 직업과 재산, 자신의 미모 등이 등급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실제 매칭을 하다보면 (회원 스펙이 등급표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지만 참고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고객과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형 결혼정보회사는 등급표 자체가 고객을 한정짓는 것이므로 절대 만들거나 사용하지 않는다"라며 "등급표대로 하는 결혼정보업체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결국 자멸할 것"이라고 전했다.

/jjw@fnnews.com 정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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