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자유주의자 공병호에게 희망의 한국을 묻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1.01 17:50

수정 2013.01.01 17:50

공병호 경영연구소장(왼쪽)이 서울 여의도 파이낸셜뉴스 본사에서 곽인찬 논설실장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통해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길과 차기 정부의 역할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공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조차 복지 메가트렌드에 맞서 싸우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박범준 기자
공병호 경영연구소장(왼쪽)이 서울 여의도 파이낸셜뉴스 본사에서 곽인찬 논설실장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통해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길과 차기 정부의 역할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공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조차 복지 메가트렌드에 맞서 싸우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박범준 기자

자유주의자 공병호. 그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지만 시장을 옹호하는 공병호 박사(53)의 철학은 되레 더 공고해진 듯하다.
복지 메가트렌드에 맞서 싸우는 그는 시대에 뒤떨어진 고독한 전사이거나 시대를 앞서가는 선지자이거나 둘 중 하나다. 보수적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조차 복지의 광풍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게 그의 예측이다. 공 박사는 서울시의 무상급식 논쟁과 뒤이은 박원순 시장의 당선을 한국 사회의 터닝포인트로 본다. 이때부터 '무상'이 우리 사회에서 보통명사로 행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과 이스라엘을 칭송한다. 저무는 일본은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나라다. 그러면서도 공 박사는 가진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의 부자들처럼 재벌·대기업이 체제유지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시민, 한국 사회의 정신혁명을 말할 때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고전강독4,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희망의 정치를 묻다'를 출간한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을 세밑에 만나 대선 이후 오늘의 한국을 진단해 봤다. <편집자주>

선심성 퍼주기식 정책들은 결국 미래 세대에 막대한 빚을 떠넘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공병호 소장. 사진=박범준 기자
선심성 퍼주기식 정책들은 결국 미래 세대에 막대한 빚을 떠넘기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공병호 소장. 사진=박범준 기자

■대담=곽인찬 논설실장

지난달 12·19 대선에서 국민은 박근혜 체제를 택했다. 박 당선인의 과제는.

▲유권자들은 대북, 복지, 경제민주화 등에서 그나마 덜 급진적인 체제를 선택했다. 그러나 매우 힘들 거다. 경기가 나쁘면 단기 부양책에 대한 요구가 잇따를 것이다. 박 당선인은 좀 더 솔직하게 국민에게 실상을 말해야 한다. 그동안 열심히 해서 경제가 굴러갔는데 우리가 열심히 해봐야 경상수지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 남고, 기름.원자재 사면 간당간당 굴러가는 구조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성장률이 7%를 거쳐 3%대로 떨어졌는데 이게 재벌 때문인가. 우리는 정직하지 않은 채 재벌 때리기를 하고 있다. 다수가 가진 낭비와 비효율성엔 입을 다물고 소수가 문제의 전부인 양 말한다. 한국 경제에 역동성을 부과하는 방법이 뭔가. 환부를 치료할 때 하나는 빨간약 머큐로크롬을 바르는 임시처방 즉 땜질식 단기 경기부양이 있다. 다른 하나는 힘들지만 피를 흘리는 길이 있다. 중병을 치료하려면 좀 피가 나야 한다. 국민이 피를 흘릴 수 있는가. 어떤 정치인도 이 이야기를 감히 못한다. 그래서 한국의 미래를 밝게 안 본다.

─지금 아리스토텔레스를 꺼낸 이유는.

▲한국사회에 도덕적 상대주의가 팽배하다.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않고 수단을 합법화한다. 생각의 위기, 지식의 위기다. 정의와 부정의, 선과 악이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서양고전이 그 같은 고민에 답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핵심사상 중 하나는 '정치는 모든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또 정체(政體·Politeria)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체란 정치체제 또는 정부를 의미한다. 정책과 제도를 낳는 최고권력구조를 말하기도 한다. 현대정치에서 정체는 선거로 택한다. 유권자들이 자기가 살고 싶은 세상의 모습을 선택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정치체제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으로 이끄는 플랫폼이라고 말한다. 정치는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오늘날 정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많은 이가 촛불시위처럼 직접민주주의를 선호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당정치다. 직접민주정의 모습을 띠었던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아테네는 오늘날의 포퓰리즘 정치가들과 유사한 민중 선동가들이 많았다. 정당정치는 선동정치나 특정 인물에 휘둘릴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안정적인 장치다.

─민주정의 약점으로 통상 중우정치가 지목되는데.

▲아테네 말기로 가면 포퓰리즘이 심했다. 포퓰리즘이 발동되면 여야가 실종된다. 마치 경매처럼 서로 100원을 주겠다, 그럼 나는 200원, 300원을 주겠다는 식으로 퍼주는 복지에 매달리게 된다. 극단적인 사례가 1981년에 출범한, 그리스 헌정 사상 최초의 좌파 연합정권이다. 집권 초기 그리스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28%였다. 이 비율이 8년 만에 82%까지 치솟았다. 한국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나라다.

─우리가 그리스를 따라간다는 건가.

▲한국판 복지의 터닝포인트는 지난 2011년 서울시의 전면 무상급식 갈등이다. 그 이전에 한국 사회에서 '무상'은 보통명사가 아니었다. 정상적인 시민들은 당연히 점심값은 스스로 내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만 국가가 대신 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원순 시장의 당선을 계기로 무상은 빠른 속도로 우리 사회에 번지면서 보통명사화했고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4·11 총선과 12·19 대선에서 무상시리즈에 제동이 걸린 게 아닌가.

▲제동은 걸렸다. 그러나 복지라는 메가트렌드를 막을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도 이 트렌드를 막긴 힘들 것이다. 정치가는 기본적으로 인기와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 좌우를 떠나 한국에선 이미 복지를 향한 메가트렌드가 시작됐다. 강봉균 전 의원(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금처럼 복지가 늘어날 경우 앞으로 3~5년 뒤면 금세 국가재정이 망가질 것으로 본다. 이런 목소리가 과연 새 정부에서 먹혀들어갈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개인 또는 국가의 번영은 단기이익과 장기이익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추를 잡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불행히도 우리는 단기이익에 몰두하고 있다. 좌파의 논리 구조 중 하나가 자원의 희소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들은 성장률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는데.

▲성장 담론은 실종됐다. 트리클다운(낙수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성장률이 2%대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진 것은 과거의 낡은 체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수술을 외면한다.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일본처럼 간다. 우리도 그렇게 갈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도 위기를 지연시킬 수 있을진 모르나 병은 더 악화될 수 있다. 성장률이 왜 중요한지는 기업 매출을 보면 안다. 망한 회사가 살아나는 확실한 방법은 영업을 통해 매출을 늘리는 것이다. 매출이 늘면 회사에 활기가 돈다. 기업 매출은 국가로 치면 성장이다. 국가채무 34%(2011년·GDP 대비)는 가장 협의의 부채다. 연금, 건강보험 등 잠재부채를 더하면 벌써 70~80%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 비정규직 6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좋다. 하지만 정규직이 되는 순간 향후 40년 정도, 미래세대까지 연금 부담이 커진다. 이건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다. 정책입안자들은 보이는 것만 본다. 엄청나게 돈을 뿌린다. 1800년대 프랑스의 경제학자 클로드 바스티아는 좋은 경제학자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효과를 동시에 고려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왜 성장 가치가 실종됐나.

▲서울시의 무상급식 논란 이후에 일어난 극적인 현상이다. 그 사건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 정치체제가 바뀌는 변곡점이었다. 좌파는 애들 밥 한 끼 먹이는 게 뭐 그리 문제인가라는 식으로 감성적으로 접근했다. 우파는 물질을 만들어냈지만 정신전쟁에선 졌다. 허례허식과 낭비, 비효율성을 경계하고 합리주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정신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배울 나라가 있나.

▲10년 전 당시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을 이끌었지만 선진국 사상 전례 없는 수준의 고강도 연금개혁을 관철했다. 통일 후 불어난 재정 부담과 독일병으로 불렸던 고실업, 연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지지를 잃은 슈뢰더 총리는 이후 총선에서 지고 정권마저 잃었다. 그는 유·불리를 떠나 국민에게 해야 할 것을 솔직히 말했던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였다. 이스라엘은 정말 멋진 교육시스템을 가졌다. 아이들이 의심을 품고 자기 생각을 키우도록 유치원 때부터 교육시킨다. 이스라엘 군은 토론을 통해 부하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조직 역량을 극대화한다. 기업 나아가 국가도 계급장 떼고 더 좋은 문제 해결 방식을 찾는다. 이것이 이른바 후츠파 정신이다. 대담하고 다소 뻔뻔한 도전정신이 창의력을 낳는다. 이스라엘 벤처신화 뒤에는 후츠파 정신이 있다. 한국에 빨리빨리가 있다면 이스라엘엔 후츠파가 있다.

─일본은 어떻게 보나.

▲힘든 상대지만 고마운 존재다. 일본은 관료의 힘으로 성장했지만 지금은 정치·관료의 폐해가 합쳐져 최악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일본 전자업체들이 실패한 원인은 기업지배구조에 있다. 소니·마쓰시타의 대주주는 금융사들이다. 금융사는 위험을 기피한다. 우리는 삼성의 성장에 대해 좀 잘했구나 하는 정도지만 사실은 반도체·모바일·카메라 등에 엄청나게 베팅한 거다.

─오너 시스템에 장점이 있다는 건가.

▲탐욕은 대단히 중요한 희소자원이다. 경제가 돌아가는 건 삶에 대한 열정과 헌신, 욕심, 인정받고 싶은 마음, 생존을 향한 투쟁에서 비롯된다. 재벌은 분배의 측면에서만 볼 게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 그걸 유지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순환출자에 손을 대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시장이 뭇매를 맞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제프리 삭스 교수 같은 이는 시장과 정부의 균형을 강조하는데.

▲과연 정부개입으로 국가경제가 활력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역사적 경험이 어디에 있는지 되묻고 싶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시장실패로 보지 않나.

▲글로벌 금융위기는 정부실패다. 금융위기는 정부가 돈의 공급을 조작했던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 때의 탈규제화와 통화공급 확대, 저금리 기조는 돈을 쓸 역량이 없는 사람들에게 계속 돈을 풀었다. 문제는 금융위기 이후 4년간 미국 정부가 푼 돈이 엄청나다는 점이다. 과거 2008년까지 푼 돈보다 지난 4년간 푼 돈이 두 배다. 빚은 또 다른 위기의 원인이 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다.

─시장은 먹고 먹히는 정글이다. 정부 규제가 불가피하지 않나.

▲정부가 필요 없는 건 아니지만 작고 강한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 일단 정부가 커지면 브레이크를 걸기가 어렵다.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은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적자 속의 민주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적자는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현 세대가 미래세대의 소득을 미리 끌어 쓴다는 의미다. 경제민주화 요구가 일고 있는데 부자들은 체제 유지 비용을 낼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부자들은 연극 관람료를 지원하는 식으로 체제 유지에 힘을 보탰다. 대신 정부는 규제를 풀고 시장에 덜 개입해야 한다.

─박 당선인은 중산층 복원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가능할까.

▲1억 총중류 사회를 표방했던 일본도 하류사회 현상을 겪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미국 등 전 세계가 양극화, 중산층의 유실을 겪고 있다. 우선 개인 차원의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과잉소비, 학력 인플레 등을 고민하고 직업 재훈련 등을 통해 스스로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 정부는 고용 창출에 세금을 깎아주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정책을 펴야 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평범함은 끝났다(Average is over)'라는 칼럼에서 자기만의 독창성을 강조한다.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기술은 이제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청년실업의 해법은 뭔가.

▲모든 사람이 대기업에 들어가려 하면 청년실업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지금보다 두 배 많아져도 마찬가지다. 좀 길게 보자. 밑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떤가. 왜 그렇게 스토리가 없는 인생을 바라는가. 왜 이미 만들어진 레디메이드 인생만 꿈꾸는가. 작은 회사에선 짧은 시간에 두루 볼 수 있다. 중소.중견 기업인들을 만나면 분개한다. 2년만 일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는데도 일할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청년들은 구직난, 중기 사장들은 구인난이다. 일종의 미스매치다. 나라 차원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도 생각해 볼 대목이다.

─계층이동이 꽉 막힌 것에 대한 불만도 크다.

▲교육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지역·소득별 할당제와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경제학 박사의 정치학 강의는 좀 생뚱맞지 않나.

▲지금까지 고전강독 4권을 썼다. 1·2권은 소크라테스·플라톤, 3·4권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다룬다.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나는 늘 자유롭게 살다 보니 크로스오버 학문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했다. 경제학은 완전히 정치학의 아래에 있다.

─한국정치의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정치가도 역할을 잘해야 하지만 훌륭한 정치는 훌륭한 시민에서 나온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훌륭한 시민은 자신이 몸담은 체제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고 자신의 직무에서 탁월성을 발휘해 국가 발전을 돕는 자다.

정리=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공병호 소장은

자신의 이름을 딴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은 국내 대표 경제학자이자 경영·경제부문 베스트셀러 작가다. 1960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라이스대학교 박사과정 4년 만인 1987년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철저한 자유주의 시장경제론자로 활발한 저술·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 7년간 연구위원과 산업연구실장을 거쳤으며 자유기업센터 초대 소장과 자유기업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2000년대 초엔 인터넷업체인 ㈜인티즌 대표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1년엔 자신의 브랜드를 내건 공병호경영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공병호의 독서노트: 미래편' '10년 후, 한국' '공병호의 10년 후 세계' '공병호의 고전강독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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