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제약과 평창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20분께 평창군 대관령면의 한 골프장 사우나에서 최 회장이 쓰러져 있는 것을 종업원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최 회장은 이날 오전 일행과 부부 동반으로 골프를 치고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다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1936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5남2녀의 둘째로 태어난 최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 중퇴 학력에 외판원으로 시작, 오늘의 광동제약을 만든 인물이다.
소학교 시절 자신을 '조센진'으로 놀리는 일본인 학생을 때려 퇴학당한 이후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타고난 성실성과 추진력으로 맨손으로 매출 4000억원대의 제약·유통기업을 일궈냈다.
1963년 10월 광동제약을 창업하고 '광동경옥고'로 영업을 시작한 이래 한방 과학화에 매진해 온 고인은 제약계에서는 '40년 최씨 고집'으로 부를 만큼 우황청심원과 쌍화탕 등 한의약 재료를 사용한 제품을 고집해 왔다. 주요 약재를 직접 고르는 고인의 깐깐한 고집은 광동 한방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로 이어졌다.
고인이 이처럼 성공한 제약사 오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포기를 모르는 도전정신' 덕분이다.
외환위기 직후 광동제약이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 고인이 직접 사향을 들고 은행을 찾아가 전후 사정을 설명한 다음 부도 위기를 모면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 같은 도전정신은 '비타500 신화'를 만들었다. 물에 녹여 먹는 비타민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마시는 비타민' 비타500을 2001년 발매하면서 전국에 비타민음료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옥수수수염차, 헛개음료 등 연이어 히트상품을 배출하면서 음료분야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과시했다.
고인은 음료사업에서 성공했음에도 제약기업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다. 비타500과 옥수수수염차의 성공을 바탕으로 전문의약품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개량신약, 신약 부문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 우수인력을 충원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진행한 것.
광동제약의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별도 연구센터(R&D) 'R&D I'는 이 같은 고인의 뜻을 담고 있다.
제약산업과 기업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고인은 국민훈장 목련장(1996년) 등 훈포장을 받았으며 대한경영학회(2008년) 등 국내외 기관이 수여하는 경영인상을 수차례 수상했다.
한편 최 회장은 유족으로 부인 박일희씨(66)와 아들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43) 등 1남3녀를 두고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hsk@fnnews.com 홍석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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