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는 가지만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다. 급하게 추진하다 보면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책도 없이 보여주기 실적에만 급급할 수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
"주요 자산을 매각하려고 이미 시장에 내놓은 상태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너무 나빠 매각이 완료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므로 지금은 기다려야 할 때다." (A사 관계자)
최근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주요 그룹사를 상대로 금융당국이 옥죄기에 들어가면서 해당 기업이 몸살을 앓고 있다.
재개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일부 그룹의 부실에 따른 시장 여파를 고려한다면 금융당국의 입장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의 접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빨리 팔라고 압박만 할 게 아니라 합리적 구조조정을 위한 대안을 찾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압박 또 압박'
9일 금융당국과 산업계에 따르면 동부그룹과 현대그룹, 한진그룹 등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그룹들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조속한 자구책 이행을 재촉받고 있다. 재무구조 개선 등을 위해 내놓은 자구계획안 실행에 속도를 내라는 것. 금융당국은 1.4분기 안에 이들 그룹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대기업 뒤에 숨어 있는 부실 덩어리인 중견기업을 올해 대대적으로 손볼 계획이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구본일 교수는 "금융당국으로서는 미적거리다가 문제가 생기면 결국 금융권에 부담을 주게 되는 만큼 기업들을 재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특히 기업들은 재촉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에 적극적이지 않아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서두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금처럼 기업들의 운신 폭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기업 스스로 속도를 낼 수 없다는 것. 재계 한 고위 관계자는 "MB정부 때에는 기업 구조조정을 안하다가 지금은 속도를 내서 단기간에 모든 걸 정리하려는 게 문제"라며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면 기업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더욱이 산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의 모든 권한을 쥐고 세세한 사항까지 모두 컨트롤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기업 경영인들을 불러 독촉하는 건 청와대에 보여주기 위해 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결국 모든 구조조정의 권한을 산업은행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에 신경을 바짝 쓰고 있다는 걸 위에 보여주기 위해 애꿎게 기업만 거듭 압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수희망자가 없다"
해당 기업들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금융당국의 압박은 커지고 있고 기업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시장 등은 얼어붙어 손을 쓰기 어려워서다. 팔려고 내놓았지만 인수주체가 없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얘기다.
LIG투자증권 오정준 이사는 "최근 M&A 시장을 보면 매각물건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인수할 주체가 극히 제한적"이라며 "그렇다면 외국 기업이나 사모투자펀드(PEF)밖에 없는데 이도 현재로서는 여의치 않다"고 설명했다.
한 재계 관계자도 "현재 M&A 시장에선 인수 주체가 없다"며 "PEF는 대부분 자금을 빌려주는 수준이고 대기업은 순환출자금지, 채무보증금지 등 손발이 묶여 있어서 매물을 소화할 곳이 사실상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IPO를 통한 유동성 확보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증권사 IB관계자는 "최근 몇년간 IPO 시장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주식시장이 워낙 침체돼 있고 기업들의 실적도 나빠 준비하던 곳들도 대부분 시기를 늦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과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한 기업 수는 모두 41개다. 이는 전년(29개) 대비로는 다소 늘었지만 2010년(96개), 2011년(75개)과 비교해서는 크게 줄어든 수치다.
■헐값매각 우려 커져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급하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기보다는 합리적인 해결책 모색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 이병기 선임연구위원은 "급하게 서두르면 헐값에 정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히려 어렵게 일군 기업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얘기다. 그는 "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은 부실을 떨어내어서 기업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보다 채권회수가 제일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고, 이에 따른 문제점들에 대해 시장에서 불만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다만 최근 정부가 PEF 시장여건을 개선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부실기업 정리·인수 시스템이 더 잘 작동하면 은행에 의해 무의미하게 구조조정 되는 일이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전경련 금융조세팀 홍성일 팀장은 "금융당국 및 채권단과 기업의 시각 차이가 큰게 문제"라면서 "기업으로선 좀 여유를 갖고 제값을 받으려 하는데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 동양과 STX그룹 사태 등으로 재계의 입장이 많이 위축된 게 사실이지만 양측의 이 같은 시각차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fnkhy@fnnews.com 김호연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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